[피터에릭] happy holiday # X-men 2016. 12. 10. 23:38



크리스마스 휴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웨스트체스터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자비에 영재학교의 건물과 교정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고 호수는 꽁꽁 얼어붙었다. 언 호수 위에서 종종 스케이트를 타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학생 하나가 완전히 얼지 않은 곳에 발을 디뎌 물속에 빠지는 사고가 난 후로는 호수 주변에 출입금지 팻말이 붙었다. 살을 에는 날씨에 야외 활동에 제동이 걸린 학생들은 따뜻한 음료를 들고 커다란 트리가 있는 벽난로 앞에 모여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의 가장 뜨거운 주제는 역시 휴일에 갈 곳에 대한 것이었다. 더러는 남쪽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가족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찰스의 집무실은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져 있었다. 에릭이 누가 이 방을 꾸몄냐고 묻자 찰스는 손수 그것들을 달았다고 대답했다. 
휴일이 시작되던 날, 레이븐은 행크의 가족을 만나러 행크와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부터 부쩍 붙어 다닌다 싶더니 둘은 다시 만나기로 한 모양이었다. 오로로는 휴일 전날 이집트에 가는 비행기에 탔다. 진과 스콧도 휴일 첫날에 학교를 떠났다. 크리스마스이브까지도 학생들은 트렁크를 끌고 에릭과 체스를 하는 찰스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완전히 닫히지 않은 창 사이로 들어온 찬 바람에 일찍 깬 에릭은 창을 닫고 선잠이 들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깨어났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학기 중과는 사뭇 다른 적막이 명절임을 실감케 했다. 잠옷 위에 긴 로브를 걸친 에릭은 불에 발이라도 쬘 요량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벽난로 옆 트리 아래에는 여섯 개의 꾸러미가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각각의 포장지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릭!"

전동 휠체어가 모터 소리를 내며 에릭 쪽으로 다가왔다. 찰스는 따뜻해 보이는 울코트 위에 목도리를 꼼꼼하게 메고 있었다.  

"네 것도 있어."
"난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아."
"알아. 그래도 선물은 사양하지 마. 일부러 준비했으니까."

찰스는 가장 아래쪽에 있던 꾸러미를 꺼내 에릭에게 건넸다. 에릭은 그의 앞에서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 있는 찰스에게 보답이라도 하듯 종이 포장을 죽 뜯었다. 안에서 나온 건 무늬가 없는 회색 스웨터였다. 

"…고마워 찰스."
"해피 뉴 이어. 따뜻한 연말이 되길 바라."
"그나저나 어디 가는 거야?"
"아. 오늘 모이라와 뉴욕 시내에 가기로 했어. 그녀가 간만에 휴가를 내서 보기로 했거든…."
"모이라 맥테거트? CIA?" 
"맞아, 그 모이라야. 에릭, 정말 미안해. 저녁 식사는 같이 할 수 있도록 할게."

찰스는 크리스마스에 혼자 학교에 남아 있을 에릭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듯했다. 에릭은 그것을 바로 알아채고 정말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학교엔 내가 있을 테니 마음 놓고 놀다 와."

찰스는 여전히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손까지 길게 내려온 잠옷 속 그의 차가운 손안으로 자신의 손을 쥐였다. 고마워. 에릭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에릭은 그가 휠체어에서 내려 차에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찰스는 간만의 데이트로 들떠있었다. 에릭은 뒷좌석의 꽃과 선물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찰스를 배웅했다. 

"괜찮다면 남아있는 아이들 지도 좀 부탁해도 될까?"
"그러지."

시동이 걸린 자동차가 길을 따라 사라지고 나자, 에릭은 왠지 모를 허탈함을 느꼈다.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찰스마저 떠나니 정말로 학교가 텅 빈 것만 같았다. 에릭은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학교에 남은 학생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총 다섯이었다. 처음 보는 신입생 둘과, 가족이 없는 열세 살 제임스, 본가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열여섯 수연, 그리고.
[피터 막시모프]
에릭은 뜻밖의 이름에 마지막 줄을 두 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다른 학생들과 확연히 차이가 나는 생년월일을 보아 자신이 아는 피터 막시모프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에릭은 크리스마스 당일엔 식당 직원이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남아있는 아이들에게 아침 식사를 직접 만들어주기로 했다. 느즈막이 늦잠을 자고 식사를 하러 나타난 아이들은 피터를 제외하고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에릭은 자비에스쿨의 수업에는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로비에서 마주치지 않는 이상 평상시에는 그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매그니토가 만들어주는 식사에 대한 기대 혹은 약간의 두려움을 가진 듯 그들은 에릭의 눈치를 보며 식탁 앞에 앉았다. 네모난 식탁 위에는 포크와 스푼 열두 개가 저절로 날아와 가지런히 놓였다. 어느새 피터가 곁에 와서 그릇을 나르고 있었다. 

" 넷, 다섯. 다 왔구나. 마음껏 들렴."

바깥 날씨처럼 얼어붙어 있던 분위기도 에릭의 음식으로 금세 풀렸는데, 그의 요리 솜씨는 꽤 수준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오믈렛을 맛본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녁으론 칠면조 고기를 주문해놓았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탄성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말하기 주저했던 아이들도 곧 입을 떼고 대화에 참여하였고 식사를 마칠 때쯤에는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내내 수다스럽던 제임스는 호기심 많은 얼굴로 에릭에게 물었다. 

"미스터 랜셔, 진짜 펜타곤에 있었어요?"

에릭은 맞은편의 피터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우물거리는 걸 보았으나 그것을 무시했다. 

"그렇단다."
"거기에 갇힌 사람은 절대 나올 수 없다고 하던데 어떻게 나오셨어요?"
"절대 나올 수 없는 곳은 아니야."
"피터."

결국 피터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자 에릭이 피터를 불러 세웠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식당을 에워쌌다.

"어떤 뮤턴트들에게는 감옥도 그들을 가둬놓는 수단이 되지 못한단다."

에릭의 어조는 다시 부드러워졌지만 그의 표정은 아까보단 다소 굳어져 있었다. 제임스는 겁을 집어먹고 그릇에 고개를 박듯이 숙여 과일 푸딩을 먹었다.

"피터. 너는 왜 집에 가지 않았니?"
"교수님 지시로 할 일이 있어서요. 엑스맨 일 때문에요."

피터는 엑스맨이라는 사족을 급히 덧붙였다. 엑스맨에 소속되어 있는 인원은 기밀 유지 서약을 하기 때문에, 그것에 관련된 일이라고 하면 다른 이들이 더 묻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나. 휴일마저 반납해야 할 일이라니, 무슨 일인지 저녁에 찰스와 이야기해봐야겠구나."

에릭이 다른 학생들에게와는 달리 쌀쌀맞은 목소리로 대꾸하자 피터의 입이 비죽 나왔다. 




식사 후 에릭은 곧장 방으로 돌아왔다. 방이 놀랄 만큼 차가워서 보니 창이 또 열려있었다. 에릭은 창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쳤다. 그리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하나를 다 피우고는 다음 것을 태웠다. 한갑을 거의 다 피워갈 때쯤에,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릭. 방해한 건 아니죠?"
"괜찮아. 들어와."

피터는 아무도 없는 방안을 괜히 기웃대며 들어왔다. 방안은 매캐한 연기와 담배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피터는 뒷짐을 지고 있었다. 에릭이 어색한 그의 팔을 지적하기 전에 그가 먼저 숨기고 있던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따뜻한 에그노그였다. "우리 집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이걸 마셔요." 에릭은 하얀 머그컵에 담긴 에그노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건네받았다. 

에릭의 방은 꽤 넓은 편이었다. 에릭은 이것의 절반으로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넓은 방을 갖게 된 건 남은 방이 이것 뿐이어서이기도 했다. 대신 에릭은 집무실이 따로 없었다. 피터는 의자를 꺼내 앉아 음료를 마시는 에릭을 바라보았다. 음료를 한입 마시고 난 뒤 그의 입가엔 옅은 크림 자국이 남아있었다. 피터는 참을 수 없는 허기에 쏜살같이 달려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에릭의 입안에서 우유와 럼 맛이 났다.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말과는 달리 에릭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덤덤히 반응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에 피터는 이제 허기진 것보다는 목이 타는 기분이 되었다. 

"당신은 어떻게 감정을 무 자르듯이 잘라내는 게 가능해요? 안 그러기로 마음먹으면, 없었던 일이 돼요?"
"네가 집에 일부러 안 간 거 알고 있어."
"……."
"네 어머니가 서운해할 거다."
"미리 말 해뒀어요. 엄마는 제가 안 오길 바랄 거예요. 요새 만나는 사람 있거든요."

만나는 사람이라는 말에 에릭의 눈썹이 꿈틀댔다.

"네 동생은ㅡ"
"로나는 그 사람 좋아해요."
"그럼 너는?"
"알 게 뭐예요? 우리 엄마 얘기 그만하면 안 돼요?"

피터는 에릭의 허벅지 안쪽을 끈질기게 쓸고 있었다. 

"저 이제 에릭이랑 하고 싶어요."

전쟁 후 슈미츠를 찾기까지 10년, 감옥에서 10년, 자신을 버린 채 헨리크 구르스키로 산 것이 10년, 그리고 다시 에릭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곁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머니도, 아내도, 찰스도…. 그러다 반 년 전 제 곁을 떠나있던 아들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에릭은 그 사실을 알게 되기 전부터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 또한 에릭을 사랑했다.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피터가 자신이 실은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에릭은 또다시 좌절했다. 

"난 거의 쉰 살이야."
"그게 문제가 되나요?"
"..나도 이제 모르겠다. 네 마음대로 해."

에릭은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그 말을 신호처럼 받아들인 피터는 에릭을 침대에 눕히고 그의 몸 위에 올라탔다. 갑작스럽게 눕혀졌음에도 에릭은 놀란기색 없이 천장만 멀뚱히 보고 있었다. 피터는 그의 맨들맨들한 목과 가슴을 차례로 입술로 훑어 내렸다. 헐렁한 면바지를 발목까지 끌어내리고 한 손에 그의 것을 가득 쥐었다. 조용히 누워 있던 에릭이 읏 하고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잔뜩 흥분한 피터와는 달리 에릭은 그가 몸을 만져줄수록 달아오르는 육체와 반대로 머리는 차가워지고 있었다. 어째서 간절히 원하던 순간이 왔음에도 전혀 기쁘지 않은 걸까. 마침내 피터의 건조한 입안에 그의 것이 머금어졌을 때 에릭은 자꾸 흘러나오는 잡념을 안으로 다시 쑤셔 넣기라도 하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에릭. 저 더이상 못 참겠어요. 넣어도 되죠?"

피터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던지고 속옷 아래서 자신의 성기를 꺼내 급히 에릭의 뒤에 밀어 넣었다. 아직 안 돼. 입에선 손 아래로 웅얼대는 소리만 났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 윤활제 없이 파고든 입구에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파고들었다. 입을 막고 있던 에릭이 소리를 꽥 질렀다.

"아파!"

에릭은 발로 피터를 밀어냈다. 그리고는 곧장 돌아누웠다. 얼굴이 계속 화끈댔다. 좀 전의 가지 않은 열기 때문인지, 버럭 밀어내기부터 한 미성숙함에 무안한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졸지에 밀려난 피터는 갑작스러운 에릭의 반응에 당황한 건지 조용했다. 에릭은 어떤 말이든 거부할 의사로 이불을 홱 걷어 몸 위로 덮었다.

"미안해요."

에릭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래를 찢어놓을 심산으로 달려든 피터에게도 화가 났지만, 실은 그것을 방조한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제건 그가 자신을 갈가리 찢어놓을 거란 걸 알면서도 거부하지 않는. 끝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나. 우리는 속도를 줄이기엔 너무 늦어서 절벽 끝으로 떨어질 최후를 알면서도 시속 삼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기관차 안에서 차를 마시며 방관했다. 

피터는 에릭의 팔을 쓸며 연신 등과 어깨에 입을 맞췄다. 

"내가 갔으면 좋겠어요? 다음에 올까요?"
"……."

에릭은 피터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
"가지마."
"…네."

어느새 에릭은 피터의 손을 쥐고 있었다. 아귀에 힘이 실려있지는 않았으나, 피터는 그가 절대 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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