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생일 축하해| # AC 2017. 4. 2. 00:14
이것은 마이클이 며칠 전 킬라니의 한 레스토랑에서 겪은 기묘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이클은 자신의 생일을 앞두고 고향을 찾았다. 실로 오랜만에 갖는 휴가였다. 생일 파티는 그가 십 대 때부터 있었던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 하기로 예정됐는데, 저녁에는 그만을 위한 공연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공연에 대해선 모두가 함구하고 있어서 궁금증이 커져가던 차, 한 친구가 귀띔하길 그의 커리어를 그대로 옮겨 놓았단다. 마이클은 부풀어버린 기대감에 남은 시간을 더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약속한 시각보다 일찍 도착했는지, 가게 안은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마이클은 장식들을 하나씩 만져보다가 화장실을 찾았다. "화장실은 지하에 있어요." 직원의 말에 그는 좁은 계단을 하나씩 내려갔다. 지하에는 아무것도 없는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마이클은 벽을 더듬어 불을 켰다. 그리고 움찔 놀라고 말았다. 화장실 앞에 이미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뭘 하는 걸까. 등골이 오싹해진 마이클은 그냥 돌아갈까 망설이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그에게로 다가갔다. 남자는 머리 위로 이상한 헬멧을 쓰고 있었다. 설마. 마이클은 오늘의 공연에 관한 친구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Hi." 먼저 인사한 그에게 남자는 미소로 답해주었다. 그리고는 마이클을 향해 불쑥 손을 뻗었다. 그가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주먹을 쥐고 있던 손이 쫙 펴졌고, 펴진 손안에는 쇠구슬 하나가 있었다.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로 생각한 마이클은 멋지네요, 라고 말할 참이었다. 쇠구슬이 그의 이마를 정통으로 강타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양손이 결박된 채로 의자에 묶인 상태였다. 머리는 주먹으로 한 대 맞은 것처럼 댕댕 울리고 있었고 눈앞은 안대로 가려져 캄캄했다. 마이클은 구슬에 맞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고는 덜컥 겁부터 났다. 계획적인 범행이었다. 얼굴과 이름을 알린 채로 살아오면서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막연한 공포가 없지는 않았으나 벌건 대낮에, 고향에서, 그것도 아는 사람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납치를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방 안의 인기척을 보아 범인은 한 명이 아니었다. 마이클이 깨어난 걸 확인한 납치범 중 하나가 그에게서 안대를 벗겨냈다. 마이클은 뿌연 시야의 초점을 맞추려 애쓰면서 자신이 어디로 끌려온 건지 확인하려 했다.
"그가 깨어났어."
무미건조한 한 마디에 마이클의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조금 전의 목소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매우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마이클은 쏟아지는 형광등 빛에 눈을 찌푸리고 있다가 하나씩 드러나는 형체를 곁눈질로 파악했다. 방에 있는 사람은 자신을 제외하곤 총 다섯이었다. 그는 그들이 공연을 하러 온다던 밴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 '커리어'라는 건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들로 분장을 했다는 의미였다. 불과 몇 시간 전의 그였다면 이게 정말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을 기절시켰던 매그니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여기서 의자에 앉아 있는 건 그와 마이클뿐이었다. 중세 암살자와 미국인, 형사는 서로 거리를 두고 서 있었고 무거운 탈을 쓴 프랭크는 바닥에 앉아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이 상황에서 겁이 안 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그들을 회유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보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저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으면 됐을 텐데요. 이런 식으로 하면 당신들에게 더 나빠질뿐이에요."
"보수와는 관계없어요."
"그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당신들을 데리고 온 친구를 만나봐야겠어요."
에릭이 한쪽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브랜든과 해리는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굴 만나겠다는 거야. 당신이 우릴 불렀잖아."
"아니요. 전 당신들 부른 적 없어요."
"그럼 내가 왜 여기에 와 있겠어?"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제가 불렀다면서, 왜 기절시킨 건데요?"
마이클은 이마 중앙에 벌건 자국을 달고 매그니토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서 바로 후회했다. 매그니토의 얼굴이 순간 험악해졌기 때문이었다. 자고 있었다면서? 누군가가 말했다. 마이클은 어이가 없었다. 그를 납치한 범인들은 마치 자신이 원해서 납치를 당했다는 양 말하고 있었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내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서였어. 케이크를 먹고 가족들을 보러온 것뿐이라고!
마이클은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돈? 저들이 말하기를 보수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협박으로 얻어낼 정보? 마이클은 자신이 불법적인 일을 감행하면서까지 얻어내야 할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역시.. 내 몸일까. 지하 어드메에서 거래되는 그런 영상을 찍기 위해 말이다. 그런 건, 정말로, 찍고 싶지 않아.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에 몸이 부르르 떨리고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절 우리 부모님께 돌려보내 줘요. 부탁할게요. 원하는 건 다 들어줄 테니까…."
마이클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슬퍼, 절망적. 있는 힘껏 쥐어짜도.. '왜 안 나오는 거지.' 연기를 할 때조차 이런 적이 없었다. 마이클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우는 소리만을 냈다. 에릭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때 그에게서 떨어져 멀찌감치 서 있던 브랜든이 끼어들었다.
"마이클 진정해요. 우리도 상황을 파악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브랜든은 마이클에게 다가왔다. 마이클은 간헐적으로 히끅거리는 소리를 내며 딸꾹질을 하면서도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브랜든을 보며 경악했다. 그는 거의 도플갱어 수준으로 자신을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랜든은 그에게 다가와 손목에 묶인 결박을 풀어주었다. 양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마이클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방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는 순간 아귈라의 손목에서 암살검이 튀어나왔고, 에릭이 그것을 손짓 한 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브랜든은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눌러 다시 의자에 앉혔다. 이 일련의 과정에 압도당한 마이클은 감히 다시 탈출을 시도할 의지를 잃고 말았다.
잠깐. 마이클은 무심코 손을 뻗는 에릭을 보다가 헬멧을 쓰고 있을 때만 해도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아챘다. 그 또한 브랜든처럼 자신과 똑같이 생겼던 것이다. 마이클은 놀라 방 안의 사람들을 차례차례 살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두 사람은 확인할 방법이 없었지만, 실내에서도 두터운 야상 점퍼을 입고 있는 형사 또한 자신의 얼굴을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마이클은 방금과는 다른 종류의 두려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대체 뭐죠? 당신들은 나잖아요?"
"그걸 이제야 알아챘군."
"엄밀히는 달라요. 당신이 우리를 만들었지만 당신이 우리는 아니니까요."
"제가 만들었다뇨?"
"우리는 우리 세계를 가지고 있어요. 당신을 통해서요. 내 세계에 당신은 없지만 브랜든 설리번은 존재하는 것처럼요."
"브랜든? 당신이 정말 그 브랜든이라구요?"
"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으로 떨어졌죠."
브랜든은 여전히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아까보다는 많이 진정된 마이클의 옆에 앉아 자신이 퇴근길에 겪은 초현실적인 경험을 털어놓았다.
[브랜든은 테이크아웃 초밥가게에서 초밥 두 팩을 사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화상채팅을 하기 전 한 팩을 다 비우고 다음 팩을 열려고 할 때 배에서 이상 신호가 왔다.]
"그 부분은 넘어가는 게 좋겠군. 필요한 부분만 말해." 해리가 끼어들며 말했다.
[브랜든은 화상채팅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상대였으나 상당한 미인이었다.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에릭과 해리는 브랜든의 불필요한 묘사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번엔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때 모니터 속 상대가 브랜든에게 손짓했다. 브랜든은 가기 직전, 상대의 소름 끼치는 예언을 듣고 만다.]
"무슨 얘기였는데요?"
"'브랜든, 너 검사받아 봐야 해.'"
"그게… 어째서 예언이죠?"
[마이클 맙소사. 브랜든은 콘돔을 쓰지 않았던 수십 혹은 수백 번의 섹스가 떠올랐고 당장 병원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결과를 알려줄 전화를 받기 직전 마이클의 세계로 떨어졌다.]
"우리 모두 인생의 전환점을 앞에 두고 이곳으로 왔어요. 아귈라는 그라나다마저 함락되면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고, 프랭크는 밴드 해체 후 집으로 돌아왔어요. 우리 중 하나가 기존의 세계를 떠나 마이클의 삶을 살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진짜고 저 녀석이 가짜라면?"
"에릭, 봤잖아. 우린 허구 속 인물이야. 하지만 마이클은 달라."
"마이클은 '진짜 세계'를 살고 있어."
그들은 이것이 아주 중요한 주제라도 된다는 듯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이클에겐 그저 이 모든 것이 허무맹랑하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는 현실감 없는 눈앞의 상황에 끝없이 되뇌였다. 이건 꿈일 거야. 꿈이어야 해. 그것도 지독한 악몽.
"그럼 당신들 중 하나가 절 대신한다고 치고, 저는 어떻게 되는데요?"
"그건 저도 몰라요. 하지만 괜찮을 거예요."
그건 전혀 괜찮지 않게 들렸다. 하지만 그에게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듯, 이들은 그들 중 한 명을 선택하지 않으면 영영 그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기세로 마이클을 둘러싸고 있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에요, 마이클."
"당연히 그래야겠죠……."
"마이클. 당신은 우리를 도와야 해요."
에릭과 브랜든, 해리, 그리고 프랭크가 차례로 말했다. 아귈라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후드로 가려진 그림자 아래 두 개의 눈만이 빛나고 있었다. 마이클에겐 그가 이 공간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왔다. 당연했다. 그는 암살자기 때문이었다. 진짜, 진짜진짜 암살자라고. 아귈라는 마이클의 눈에서 두려움을 읽었는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귈라는 스페인어로 이야기했고, 마이클은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Tienes que aprender español."
"전 스페인어를 못해요."
"아귈라. 영어로 말해."
브랜든의 지적에도 아귈라는 꿋꿋하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했다. 브랜든과 해리는 에릭을 바라보았다. 아귈라에게 말하는 에릭을 보면서 마이클은 그가 여러 개의 언어에 능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가 스페인어를 할 수 없어서 자기 대사가 줄었다는군."
"맙소사, 말이 없는 건 아귈라의 콘셉트라구요!"
마이클은 아귈라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아귈라는 잠시 마이클을 노려보더니 다시 답했다. 마이클은 도움이 필요한 눈으로 에릭을 바라보았다.
"이번 건 모르는 편이 낫겠군."
"뭐라구요?"
아귈라는 뒤로 저벅저벅 걸어가더니 문 옆에 기대고 섰다. 프랭크가 중얼댔다. 포기했군. 마이클은 아귈라가 어떤 무시무시한 대답을 한 건진 결국 알아낼 수 없었으나, 제 삶을 대신 살길 포기한 것은 다행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가 포기했다 한들 자신의 앞에는 아직도 네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이클은 고개를 늘어뜨리고 명상에 잠긴 아귈라를 흘끔 훔쳐보다가 문득 방안에 창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긴 좀 전의 그 복도인 걸까?
"마이클. 당신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봐요."
브랜든이 마이클에게 바짝 다가오며 말했다. 마이클은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얼굴에 흠칫 놀랐는데 정작 브랜든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저라면…."
"저라면?"
"저라면 치료를 받겠어요."
"하지만 인간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좋아하죠."
"저라면 성병으로 삶이 끝나는 픽션 따위는 만들지 않을 거예요."
"마이클. 제게는 당신의 삶이 필요합니다."
브랜든은 마이클이 꿈쩍도 하지 않자 노선을 변경한 듯했다. 마이클은 순간 브랜든의 눈동자가 욕망으로 번득였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일궈온 것들을 생각해봐요. 당신은 성공했어요. 뉴욕에 집도 있잖아요. 그건 정말 많은 사람들의 꿈이라구요."
"전 어릴 적부터 배우가 꿈이었어요."
"이제 와서 그러지 마요."
"진짜예요."
마이클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브랜든에게…."
브랜든은 잔뜩 기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 삶을 주지 않겠어요."
당신이 벌인 일은 당신이 수습하세요. 브랜든은 크게 실망하며 돌아갔다. 마이클은 에릭과 해리가 미소 짓는 것을 보았다. 프랭크는 성호를 긋고 있었다. 브랜든이 돌아가자마자 그 자리에 에릭이 앉았다. 에릭을 마주한 마이클은 긴장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그를 꿰뚫어 보는 듯한 청록색 눈동자는 거울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얼굴은 같을지 몰라도 별개의 인격체였다. 마이클은 에릭이 돌연변이 형제회의 수장이며, 협상에 매우 능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저 녀석 말에 따르면 내가 십 년간 감옥에서 썩을 거라던데."
저 녀석이라고 불린 프랭크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저는 엑스맨을 봤어요. 이곳에서 엑스맨을 본 사람이 저밖에 없더군요. 그를 보자마자 열광한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는 뜻이라고요.
"사실인가?"
에릭이 프랭크의 사족은 무시하며 말했다.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미래의 나는 계획에 성공하는가 보군."
"스포일러."
"조용히 해. 프랭크."
"어, 음. 자세히 말해줄 순 없지만, 조심하세요. 그.. 계획이라는 거요."
"알려줘서 고맙네."
에릭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클은 어리둥절해 하며 말했다.
"끝인가요? 제 삶이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그건 네가 결정할 일이야."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브랜든이 멋쩍게 웃었다. 마이클은 에릭이 그의 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살길 원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의 앞에 기나긴 투옥생활이 기다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마이클은 자신이 에릭에게 앞으로 있을 일들을 낱낱이 누설한다고 해도 운명을 피하기 위한 요령을 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에릭이 자리를 뜨고 해리가 그곳을 메웠다. 그 또한 노르웨이의 유능한 형사였기 때문에 마이클은 에릭을 무난히 보냈다고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이클을 보는 해리의 표정은 왠지 알쏭달쏭했다.
"잠깐, 그 영화는 아직 개봉도 안 했잖아요."
마이클의 말에 구석에서 (가면의)이마를 벽에 가만히 대고 있던 프랭크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빠르게 다가와 무시무시한 힘으로 해리를 벽으로 밀쳤다.
"개봉도…개봉도…안 했으면서…!"
해리는 프랭크를 쉽게 제압할 수 있을만큼 충분히 훈련받은 경찰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를 내버려 두었다. 보다 못한 마이클이 해리에게서 프랭크를 떼어내려 했다. 프랭크는 마이클의 만류에도 엄청난 힘으로 버둥대다가 마이클과 함께 바닥으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으으, 으으. 프랭크는 가면을 붙잡고 앓는 소리를 냈다. 마이클은 프랭크를 다시 벽 부근 바닥에 앉히고는 엉망이 된 머리카락과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
"해리 홀레. 들어본 적 있어."
"나 그거 알아. 마법사잖아. 저 사람은 왜 안경을 쓰지 않았지?"
"그건 포터야."
"뭐?"
"그건 포터고 저 사람은 홀레라고."
"...해리, 부탁할 게 있어요."
마이클은 이 아수라장 속에서 눈에 띄게 지쳐가고 있었다.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그는 해리에게 바짝 다가가 그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여기서 날 꺼내주고 이 사람들 연행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그러긴 힘들 것 같군요. 아일랜드 경찰에 문의해보세요."
"이봐요. 제 삶을 원하지 않나요?"
"아니요."
"네? 정말로요?"
"전 제 세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럼 여기엔 왜 오셨죠?"
"저는 홍보차 왔어요."
마이클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해리를 보았다. 그의 미소와 여유는 바로 이것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전 그런 역할이에요. 반전을 빙자해 배신감을 주는 사람이요. 감동에 젖어 있는 순간 찬물을 끼얹죠. 스크롤이 올라가면서 '이건 --과--로부터 도움받았습니다.' 당신도 그 문장에 실망해본 적 있지 않나요? 그렇지만 저분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진짜고, 전 그걸 이용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마이클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계적으로 대사를 뱉고 있는 해리는 정말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만 온 것처럼 보였다.
"10월 개봉입니다."
"아…."
"곧 포스터가 공개될 거예요."
"……행운을 빌어요. 해리." 마이클이 해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당신도요."
해리는 주저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클은 기민하고 날카로운 직감을 가진 형사가 어째서 이런 임무까지 맡게된 건지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해리는 모여있는 무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앉더니 시계 알을 두들겼다. 아무래도 그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제 남은 사람은 프랭크뿐이었다. 하지만 벽에 붙어 쪼그려 앉은 프랭크는 마이클을 설득할 의지마저 없어 보였다.
"프랭크?"
이름을 불러보아도 묵묵부답이었다. 크흠, 마이클은 목을 가다듬고 발표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랭크를 제외한 네 명은 중대발표를 앞둔 마이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발표를 하기 전, 제 앞의 다섯 명을 다시 찬찬히 살폈다. 자신의 삶을 원하지 않는 세 명, 언어가 통하지 않는 한 명, 그리고 다른 이의 삶을 간절히 원하는 한 명.
"제 인생이 완벽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남은 인생이 무사 탄탄하리라는 보장도 없어요. 하지만 여러분들 중 한 분에게 제 삶을 빌려드릴 수 있다면 전 프랭크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전 프랭크가 언제나 신경 쓰였어요. 프랭크가 이젠 행복하길 바라요."
프랭크는 마이클을 보고 있었다. 마이클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으나 아마도 놀란 표정일 거라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마이클은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저 문으로 나가면 돼요."
브랜든이 아귈라가 지키고 서 있던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이클은 왠지 브랜든에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으나, 브랜든은 마이클의 결정을 존중하고 있었다. 마이클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다섯 사람은 방을 나가려고 하는 마이클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아귈라가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문밖으로 컴컴한 복도가 그를 맞았다.
"뭐 의식이라던가 그런 걸 하지는 않나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닌가? 어서 가게."
에릭의 빈정거림에 마이클은 급히 수긍했다. 좋아요. 마이클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복도로 발을 디뎠다. 먼지 가득한 지하 복도의 텁텁한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밖으로 걸음을 떼자마자, 등 뒤로 문이 쾅 닫혔다. 마이클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흰색 철제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닫혀있었다. 마이클은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리고 프랭크는? 그때, 내려올 때 보았던 계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마이클은 반신반의하며 계단을 올랐다. 위층에서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들리기 시작했다. 어?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자 마이클은 파티가 한창인 레스토랑에 와있었다. 하나씩 보이는 익숙한 친구들의 얼굴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돌아왔다.
"마이클! 어디 있었어? 너 없이 공연을 시작하려던 참이었다고."
마이클은 손목을 붙잡혀 널찍한 공간으로 끌려갔다. 그곳에는 더블린에서 왔다던 유명 밴드가 연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밴드의 구성원들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는데, 그들은 그의 얼굴을 하고 있지도 않았고 모두 부직포로 만들어진 코스튬을 입고 있었다.
"어때?"
"..환상적이야. 너무 멋진 아이디어야."
프랭크 가면을 쓴 보컬이 시작을 알리듯 마이크를 들었다.
"생일 축하해요. 마이클."
함성과 함께 장내의 불이 꺼지고, 조명이 무대를 비췄다. <시작할 노래는... 감자 함유량이 높은 뇨끼.> 밴드는 실력이 출중할뿐더러, 패러디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마이클은 약간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곧 잊고 아낌없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었음에도 자신은 어쨌든 이곳에 무사히 와있었다. 밴드는 앵콜곡까지 마친 후에 마이클을 무대 위로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 마이클이 하는 노래에 반주를 맞춰주겠다고 했다. 마이클은 프랭크 가면을 쓴 보컬에게 자신과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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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 전엔 재밌었음 (ㅠ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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