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에릭]| # X-men 2017. 4. 27. 01:06
너 시뮬레이션 평가서 제출 안 했더라. 훈련실에서 환복하고 나오던 피터에게 레이븐이 말했다. 피터의 머리칼은 덜 말랐는지 끝이 젖어 있었다. 한 손에 고글과 땀으로 젖은 훈련복이 든 가방을 멘 채로 찰나 동안 멍청하게 눈을 끔벅거리던 피터는 금세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지난 평가일에 배탈이 나는 바람에 날짜를 한 번 미룬 뒤로, 다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완전히 잊고 있었어요. 피터는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렸다. 평가서가 누락되었다면 꼼짝없이 낙제였다.
"시간 내주시면 언제든 갈게요."
"실은 그것 때문에 부른 거야. 난 다음 주까지 학교에 없거든."
"그럼 제 평가서는 누가 작성해주죠?"
"다른 감독관을 찾아봐."
"그게 자비에 교수님이 될 거라곤 말씀하지 말아 주세요."
정규 수업이었다면 다른 선생을 찾으면 될 일이었지만, 지하 벙커에 출입할 수 있는 인원은 훈련 중인 그를 포함한 엑스맨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아무리 찰스의 방황기를 첫인상으로 가지고 있는 피터일지라도 엑스맨의 수장에게 평가를 받는다는 건 부담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사람은. 행크는 원칙주의자였다. 피터는 원칙주의자를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 절대 나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지금 필요한 사람은 늦었다고 감점을 하는 사람이 아닌 뻔한 실수조차 너그럽게 봐 줄 사람이었다. 부모처럼 내 사정을 백 퍼센트 이해해 줄 사람. 피터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에릭은 피터의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운 좋게도 그의 시간이 비어있어서, 바로 함께 리프트를 타고 벙커로 갈 수 있었다. 피터는 땀 냄새가 폴폴 나는 훈련복을 다시 입고 돌아와서는 능숙하게 기계를 켜고 만지는 에릭의 옆에 섰다. 프로그램을 조작하는 중인 그는 까끌까끌하게 올라온 수염 하며 움푹 패인 눈 밑까지 피곤에 찌든 몰골이었다. 어쩐지 며칠 동안 통 안 보인다 싶더니. 나갔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건가.
에릭은 눈 깜짝할 새에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피터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어 자신도 준비를 마쳤다는 것을 알렸다. 피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 위로 고글을 덮어 썼다. 문밖의 황야는 한창 모래를 생성하는 중이었다.
한 시간 내내 모래바람을 흠뻑 뒤집어쓴 덕분에 샤워를 또 하게 됐다. 에릭이 밖에서 혹여 기다릴까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피터는 은빛 머리칼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왔다. 에릭은 문항의 빈칸마다 꼼꼼하게 코멘트를 적고 있었다. 피터는 강아지처럼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물기를 털어내고 에릭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잘했구나."
에릭은 칭찬과 함께 다 쓴 종이를 피터에게 돌려주었다. 휘갈긴 글씨는 자신의 것과 닮아있었다. 평가지 끝의 사인 위로 적힌 숫자에 피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대보다도 훨씬 후한 점수였다. 에릭은 격려의 의미로 피터의 어깨를 감쌌다. 얇은 티셔츠 위로 따뜻한 손바닥의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직도 다수의 학생에게 어렵고 때론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대상이었으나 에릭은 알고 보면 다정한 면이 더 많은 사람이었다. 적어도 자신에겐 그랬다.
"잘했는데 상 없나요?"
"상은 무슨."
"그러지 말구요."
"뽀뽀라도 해줘?"
"나쁘지 않네요. 사양 안 할게요."
에릭은 그들 외에는 아무도 없을 방을 괜히 한 번 휘휘 둘러보고는 피터의 볼에 입술을 가볍게 대었다가 뗐다. 간지러운 볼 키스에 탐탁지 않아 하는 피터의 표정을 보고 에릭은 일부러 쪽 소리가 나도록 입에도 건조한 입술을 눌렀다가 뗐다. 제멋대로 삐죽삐죽 튀어나온 수염이 피터의 살갗을 따갑게 파고들었다. 모처럼의 상이 성에 차지 않은 피터는 에릭의 뒷목을 잡고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예상을 못 한 건지 호리호리한 에릭의 몸이 휘청하더니 쉽게 안겨 왔다. 피터는 곧바로 말캉한 혀를 그의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에릭은 끌려간 몸에 당황한 듯 뻣뻣하게 서 있다가, 이내 피터의 몸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에릭은 그의 젖은 머리칼 속으로 손을 넣어 마사지하듯 헤집으며 허락 없이 들어온 혀를 맞았다.
"내 방으로 갈래?"
입술을 뗀 직후에 에릭이 그렇게 말했다. 피터는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들었지만 섣불리 그러자고 대답하진 않았다. 얼마 전의 결심 때문이었다. 그에게 이야기하기로. 당신이 내 아버지라고. 우린 여기서 그만두어야 한다고. 그의 결심 따위를 알 리가 없는 에릭은 피터의 토실한 볼을 엄지로 쓸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다시는 이런 공기를 가지게 될 줄 몰랐다. 에릭은 기다림이 어색한 듯 슬슬 피터의 청바지 위로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물리적 자극을 받기 전부터 이미 단단해져 있던 속옷 안의 것은 결심을 무색게 했다. 변한 건 피터 자신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에릭은 여전히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달뜬 얼굴을 멋대로 해석한 건 당신이잖아요. 피터는 에릭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거 제출하러 가야 돼서요."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어정쩡하게 허공을 배회한다. 전이라면 에릭이 눈을 깜박하는 찰나에 레이븐의 책상 위에 평가지를 올려두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거나 지금이 아니라면 다음을 분명하게 기약했을 터였지만 피터는 그냥 그렇게 말했다. 영문을 알 리 없는 에릭은 조금 실망한 목소리로 그래. 알겠어. 하고선 순순히 물러났다. 피터는 어쩌면 바보 같은 건 에릭이 아니라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에릭은 혈연이니 아버지니 하는 그 빌어먹을 변명을 대지 않고서도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머저리인 건 확실히 피터 자신이었다.
학교 안의 전등이 모두 소등되고 방마다 웅성대던 목소리들도 잦아들었을 때 피터는 몰래 방안을 빠져나왔다. 문을 닫기 직전 잠든 스콧이 몸을 뒤척이는 소리를 냈다. 도망치듯 지하를 벗어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피터는 에릭의 방문을 두들긴다. 할 말이 있어서라는 이유에서였다.
"뭐하자는 건데?"
에릭은 문 옆으로 손을 짚고 삐딱하게 물었다. 그는 아래위로 맞춘 듯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취향에서 벗어난 걸 보아하니, 학교에서 지급하는 옷인 모양이었다. 저 안 들여보내 주실 거예요? 그의 물음에 뾰족한 답이 생각나지 않아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에릭은 한숨을 쉬며 팔을 거뒀다. 그는 잠자리에 들기 전 책을 읽던 중이었다. 피터는 가로로 덮인 책의 제목을 눈으로 슬쩍 훑고 에릭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에릭은 여전히 팔짱을 끼고 서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아깐 죄송했어요."
놀랍게도 그 말을 내뱉자마자 에릭의 굳은 표정이 녹아내리듯 풀렸다. 에릭은 피터가 그를 거부한 것이 기분이나 사소한 사정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심각해 했던 걸 멋쩍어했기 때문이었다. 에릭은 피터의 옆에 앉아 위로하듯 그의 몸을 팔로 감싸 안았다. 괜찮아. 나도 그럴 때 있으니까. 자신보다 인생의 경험이 훨씬 풍부할 그가 또 한 번 이해를 베풀어온다. 피터는 늦은 오후에 불쑥 들었던 감정이 다시금 샘솟는 것 같았다. 알지도 못하면서. 바보 같은 아버지. 하고 싶은 말을 목 안으로 삼키고 피터는 에릭의 잠옷 바지 속으로 손을 넣었다. 아직 말랑한 가랑이 사이를 움켜쥐었다. 헙하고 바로 옆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피터는 에릭을 똑바로 눕히고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붉은 주머니를 입안에 머금었다가 통통하게 부푼 성기를 덥석 물었다. 아아, 아. 머리 위로 낮은 신음이 짧게 이어졌다. 피터는 혹여 이로 살덩이를 긁지 않도록 입을 오므리고 천천히 에릭의 것을 집어삼켰다. 급박하게 시트를 그러쥐는 손에 맞춰 이번엔 바깥으로 빨아들였다. 한입에 담기던 살덩이는 고작 몇 번 고개를 움직였을 뿐인데 어느순간부터 반만 물렸다. 아, 피터, 피터. 이름을 불러대는 그는 입안에서 착실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명백히 자신에 의해 흥분하는 그를 보며 자신 또한 아래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경멸스러울 뿐이었다. 피터는 혀를 넓게 펴서 기둥을 감싸듯이 핥고 입술로 훑었다. 기둥의 끄트머리에서 맑은 액이 찔끔찔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터는 샅샅이 그것을 핥아먹었다. 혀를 쓸 때마다 마른 허벅지 안쪽 근육이 움찔대는 것이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에릭의 것은 아래를 잡지 않아도 살아있는 것처럼 주변을 꺼떡거렸다. 피터는 뿌리를 세 손가락으로 문지르면서 성기를 문 고개를 위아래로 빠르게 움직였다. 나, 나올 것 같아. 사정의 순간을 알리는 아비에게 피터는 성기에서 입을 떼고 갈라진 부분을 혀로 문질러 쾌락을 선사했다. 울컥하고 나온 점액질이 감싸 쥐고 흔드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빠져나왔다. 자위도 안 해요? 손바닥 안을 한가득 채운 하얀 웅덩이를 보다가 피터는 물었다. 에릭은 대답하지 않으면서 가시지 않은 흥분을 팔로 가렸다.
"만약에요. 이건 정말 가정인데. 우리가 번식이 금지된 이 종족이라든지, 다른 시공간에서 온 쌍둥이라든지, 아니면 어릴 적에 헤어진 부자라면 어떨 것 같아요?"
에릭은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내렸다. 좁혀진 미간이 조금 전의 사정 탓인지 어처구니없는 그의 물음 때문인지 피터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떠보지 말고."
에릭은 몸을 일으켜 신경질적으로 반쯤 벗겨져 있던 바지를 추켜올렸다. 그는 마음이 상한 듯했다. 피터가 이상한 이유를 대면서까지 그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려서였다. 아니요. 할 말 없어요. 할 말 있다는 거 다 핑계였어요. 그냥 와 본 거예요. 피터는 고개를 저으며 방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로 손을 닦아냈다. 끈적하게 손바닥에 늘어 붙은 정액이 결심과 함께 씻겨 내려간다. 역시나 이야기하지 못할 줄 알았어.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밝혀질 것이었지만, 영영 제 입으로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에릭만이 그릇된 관계에 죄책감을 느낄 터였다. 결국엔 둘 다 불가능한 선택지였다. 아버지와 아들도, 연인도. 피터는 보드라운 수건에 젖은 손의 물기를 닦아내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서 떡하니 굳어버리고 말았다. 침대 위에는 완전히 나신이 된 에릭이 누워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할 용기도 없으면서. 내가 상관 안 한다면 어떡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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