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크 구르스키의 우울한 초상 # X-men 2016. 9. 10. 18:43



헨리크는 신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매일 기도를 한다. 식사를 하기 전과, 잠든 아이의 침대맡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가정에 평화를,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칠 수 있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대상에게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믿음은 철저히 자신에게 기반둔 것이었고 그의 기도는 매번 자신에게 하는 다짐에 가까웠다. 


에릭은 일생을 그러지 못했지만 헨리크 구르스키는 이 동네에서 꽤 건실한 사람이었다. 새 일자리를 얻은 지 5년째, 매달 나오는 봉급 외에 보너스를 쥐고 나오는 날이 더 많아졌다. 지난주에는 야콥의 헛간을 고치는 걸 도와주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다음 달에는 그가 집의 지붕 페인트칠하는 걸 도와줄 것이다. 일터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에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교회에 간다. 그는 매주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를 몰고 시내의 교회에 갔다. 



마그다가 모아쥔 에릭의 손을 따뜻하게 감쌌다. 에릭은 그녀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그다는 그 미소에 회답하지 않았다. 대신 어디론가로 눈짓을 하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길게 늘어진 창 뒤로 주먹만 한 새끼 울새가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이상했다. 창밖의 새는 교회 안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새가 건물 안을 지켜볼 수 있는지 에릭은 잠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했지만 결국 다른 답에 도달하지 못했다. '새는 분명 안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니나를 보고 있었다.

니나는 호기심 많은 얼굴을 하고 울새를 올려다보았다. 에릭은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다만 폭발적이었던 자신의 첫 능력 발현에 비해 비교적 니나의 것은 깜짝 선물 같은 형태여서, 에릭은 아이가 자연스럽게 능력을 체화할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었다.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니나는 매일 많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었다. 일주일에 한 번 오는 시내에는 산짐승이 없다. 교회에는 시끄러운 음악도 아이가 놀랄만한 것도 없었다. 교회는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아마도 느슨한 낙관일 터였다. 울새가 니나를 부르듯 부리로 유리를 딱딱 쳤다. 소리는 신부의 목소리에 묻혔지만 눈을 감고 기도를 하던 한두 명이 움찔하고는 주위를 두리번댔다. 

에릭은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말했다. 니나, 그러면 안 돼. 하지만 니나는 에릭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답하길 바라는 울새-에릭은 새가 니나의 대답을 바라고 있다고 확신했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새는 안으로 들어오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듯이 퍼덕이며 날갯짓을 했다. 그리고 순간, 에릭은 니나의 눈에서 섬광을 보았다. 에릭은 멈추게 할 요량으로 급히 니나의 손을 잡았다. 그것이 기폭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새가 갑자기 부리로 창문을 마구 쪼아댔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에릭의 방해에 니나는 크게 울음을 터뜨렸고 기도를 하던 신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신부는 우는 니나를 보는 게 아니었다. 붉은 울새는 이제 교회 안 대부분의 사람의 주의를 끌고 있었다. 새는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쉼 없이 몸통을 창문에 부딪치고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는 사람도 있었다. "헨리크." 마그다가 급히 그를 불렀다. 모두가 멍하니 창밖의 새를 보는 사이 에릭은 니나를 안고 교회를 빠져나왔다.



에릭은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야 했다. 종착지에서 내려 가장 외곽에 자리한 집까지 걷는 동안에야 니나는 겨우 에릭의 등에서 잠들었다.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자마자 타이어가 흙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금방 그들을 따라 나온 듯한 그녀는 마치 화가 난 것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마그다는 선반에 키를 내려놓고 에릭에게 말했다. 


"얘기 좀 해."


에릭은 잠든 니나를 한 번 돌아보고는 등 뒤로 방문을 닫았다. 마그다는 턱을 문지르며 초조하게 부엌을 작고 빠른 보폭으로 돌고 있었다. 에릭은 나무로 된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것이 신호인 것처럼 서성이던 마그다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는 할 말을 망설이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에릭은 돌연변이가 아닌 마그다가 어떤 부분에서 니나를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도. 그것은 돌연변이인 그가 마그다와 충돌하는 지점이었다.


"늘 이야기했지. 니나에겐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걱정하지 마. 나도 처음엔 조절하지 못했어. 내가 가르칠 수 있어."

"당신이 무슨 수로? 방금도 니나 뿐만 아니라 당신까지 위험에 빠질 뻔했다고."

"약간의 시행착오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어. 나도 그랬고."

"니나가 능력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당신처럼?"

"나는, 적어도 나는 할 수 있었어."


그건 거짓말이었다. 금속이 가진 파괴력을 두려워하기 시작한 뒤로부터는 쇠붙이들이 에릭의 몸을 피해갔지만, 어릴 적엔 달랐다. 그는 겨드랑이 아래에 길고 가느다란 상처가 있었다. 수용소의 부엌에서 순간적으로 능력을 조절하지 못해 날카로운 칼에 베인 것이었다. 에릭은 그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몇 년 뒤면 니나도 학교에 가."


알아. 에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땅엔 돌연변이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없었다. 학교는커녕 아직도 납치되어 지하세계에서 물건처럼 거래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전파를 타고 나왔다. 이곳에서 자신을 돌연변이라고 말하는 건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했다. 에릭은 니나를 공립학교에 보낼 생각이었지만 마그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에릭이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자 마그다는 결심한 듯 거실 수납장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왔다. 갈색 서류봉투 안에는 팸플릿을 비롯한 책자들이 수북하게 담겨있었다. 입학 안내, 학교 소개, 익숙하고 그리운 얼굴. 이게 다 뭐, "…." 에릭은 봉투 겉면의 익숙한 마크를 보고 탄식했다.   


"오, 안 돼. 찰스는 이걸 보내면 안 됐어."

"당신에게 온 게 아니야."


마그다는 하단에 적힌 이름을 가리켰다.


[니나 구르스키 귀하]


"니나에게 보냈어."


에릭은 건네받은 소포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마그다의 말에 에릭은 고개를 저었다. 에릭은 어떻게 니나에게 소포가 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아주 오래된 방식이었다. 세리브로를 이용한 것이었다. 영리한 걸, 찰스. 다른 돌연변이들을 찾기 위해 대륙을 누볐던 수십 년 전을 회상하며 에릭은 감탄했다. 혼자가 아님에 기뻐하던 이들, 다시는 찾지 말라며 욕을 하던 이들, 흔쾌히 함께하겠다던 이들.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리자 마치 찰스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찰스는 그때처럼 전 세계의 돌연변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있었다.


하지만 곧 에릭은 과거의 환상에서 깨어나야 했다. 마그다가 온 지 수 달이 지난 소포를 지금에서야 꺼낸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니나가 찰스의 학교에 가길 원하고 있었다. 내용물을 이미 수차례 읽은 건지 책자들 대부분이 벌어져 있었다. 에릭은 마그다가 왜 니나를 이곳에 보내고 싶어 하는지 알았다. 이곳이라면 니나는 외부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을 터였다. 에릭은 의견에 일부 동의했다. 하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마그다…."

"니나는 이곳에서 배워야 해."

"미국으로 갈 순 없어. 알겠지만 나는 그곳에서 수배자고.."

"가족이 다 갈 필요 없어. 헨리크, 여긴 기숙학교야."


에릭은 난처한 얼굴로 이마를 문질렀다. 자비에 교수는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린 니나만을 머나먼 타국으로 보내는 문제였다. 게다가 찰스와 연락이 끊어진 지도 수년이었다. 니나가 태어난 후로 에릭은 단 한 번도 찰스에게 아이의 소식을 전한 적이 없었다. 에릭은 자신의 아이가 그의 학교에서 배우길 원한다고 했을 때, 찰스가 지을 표정을 상상해보았다. 


"…내가 그에게 연락해 볼게."


마그다는 집에 온 뒤로 마침내 처음으로 안도한 얼굴이 되었다. 그녀는 에릭의 손을 감싸 쥐었다. "니나는 잘해낼 거야." 울상이던 에릭이 마그다의 손을 꼭 마주 잡으며 말했다. 우린 잘해낼 거야. 




일주일 뒤, 프루슈쿠프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연방 요원은 에릭 랜셔의 폴란드 거주지에서 자비에 영재학교의 팸플릿을 발견하고 찰스 자비에 교수가 그의 도주와 연관이 있는지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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