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강] # 未生 2015. 1. 6. 02:38

성준해준




(1)


“강해준 씨는 일이 이제 끝나서 오고 있다네.”

“뭐? 누가 와?”



동식이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며 말했을 때, 이미 반쯤 취해있던 성준은 셔츠 단추를 두 개쯤 풀고 의자에 손을 짚고 삐딱하게 앉은 채로 되묻는 중이었다. 잘못 들었길 바라는 이름 석 자를 되뇌면서. 아무도 아니니까 좀 잘래? 동식이 아이를 달래듯 성준을 바로 세우자 팔을 과한 동작으로 빼낸 성준이 목청을 높였다. 야, 나 안 취했거든? 



“그 메추리알 같은 놈이라면 그 새끼 부르지 마라. 김동식.”



덧없는 떼를 쓰는 성준을 보며 동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술맛 떨어진다는 둥, 그 새끼가 오면 자기는 가겠다는 둥 성준은 꼬인 혀로 끊임없이 꿍얼댔다. 동식은 먼저 연락해보겠다고 자처한 일주일 전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왜 내가 중간에 끼어가지고. 왜, 왜 하필 나인 거냐고. 



“……명색이 동기 모임이라고 모인 건데 부르긴 해야 하지 않겠냐. 본인이 안 오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은 의사라도 물어봐야지.”

“눈치가 있으면 빠져야 될 것 아니야.”   



안 그래? 와서 좋을 게 뭐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성준이 오이스틱을 아그작 깨물었다. “허? 오셨네?” 그리고 마침 입구에서 젖은 우산을 접고 막 들어오는 해준을 보던 차였다. 해준은 막창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눈에 띄는 동식을 발견하고서 무리를 향해 다가왔다.  


넥타이를 풀어낸 셔츠차림의 그는 연이은 야근으로 인해 피곤에 쩌든 얼굴이었다. 익지 않은 업무에 퇴근이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인 때, 누구도 자신이 오는 걸 환영하지 않는 모임에 나가는 것은 해준으로서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이곳에 오기로 한 것은 단 한 가지, 첫 번째 동기 모임인데 참석하는 게 어떻겠냐는 동식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였다. 무리를 향해 가벼운 목인사를 하는 해준을 향해 성준이 비아냥거렸다. 



“바쁘실 텐데 여기까지 오셨어?”



해준은 가의 빈자리에 앉으려다가, 그 낯선 얼굴을 보았다. 앞에서 자신을 불청객이라 못 박듯 약을 올리는 그가 누구인지 빠르게 기억을 더듬었다. 자원팀 인턴. PT 시험을 저보다 몇 점 차로 높게 받아 1등을 했다던. 이름은…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인턴들 사이에서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던 그에겐 이 자리에서마저도 낯익은 얼굴이 손에 꼽았다. 어차피 반 이상은 떨어져 나갈 사람들, 알아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고.



“응.”



해준이 답하자 테이블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들에겐 예상치 못했던 장면이었던 것이다. 명백한 적의에는 같은 것으로 되돌려 알려준다. 해준은 애초에 숙이는 성격도 아니었다. 막창이 지글지글 타는 소리를 배경으로 서로가 눈치만 보는 통에 성준만이 이를 드러내고 히죽이며 웃었다. 침묵 속에서 긴장이 팽팽히 당겨졌고 한계까지 늘여진 그것이 끊어지기 직전 동식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우리 뭐 더 시킬까? 소주? 소주 드시죠? 애를 쓰는 동식의 말허리를 자르고 성준이 다시 해준에게 물었다. 



“무슨 팀이라고 했지? 지나다니면서 몇 번 봤거든. 아아, 워낙 튀는 얼굴이시긴 하지마안.”



성준은 무표정한 해준의 얼굴을 흉내 냈다. 해준은 경박하게 좌우로 흔들리는 제 앞의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웃음이 많은 편은 아닐지라도 매번 심각하지는 않는데. 남들 눈에 저렇게 보이기도 하는 걸까. 웃음을 참는 분위기인 와중에 옆자리의 현이 피식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철강 1팀.”

“아 그래? 1지망 자원팀 지원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떨어졌나 봐?”



해준이 원하던 부서에 배치받지 못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존심을 긁기 위해 던져본 말이었다. 그리고 그 팀에 배치받은 게 성준이라는 걸 해준도 막 알게 된 참이었다…. 



“면담할 때 부장님이 장기 사업에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 자원팀보다는 철강팀과 더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야.”



하지만 해준은 개의치 않고 상대의 역류에 차분히 응수했다. 이번엔 성준도 달리 할 말이 없었는지 잔을 꺾었다. 해준의 잔은 좀 전부터 계속 비어있는 상태였다.



“근데 왜 계속 반말이야.”

“먼저 하길래. 반말.”

“이게 진짜.”


 

한 마디도 지지 않는 해준에 성준은 결국 성질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위태하게 걸쳐있던 잔이 테이블을 뒹굴었다. 맞은 편에 앉은 동식이 일어나 성준을 앉혔다. 아이- 참. 왜 그래. 오늘 같은 날은 다 같이 즐겁게 술 좀 먹자. 강해준 씨, 여기 잔 받으세요. 성준은 눈을 부라리며 해준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해보자는 거지? 알았어. 그때 준식이 끼어들었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스물여섯입니다. 여기도 다 스물여섯이고요. 저쪽은 일곱.”

“스물넷입니다.”



해준은 동식이 채운 잔을 한 번에 비웠다. 해준이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성준이 허,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건수를 잡았다는 듯 성준은 이죽거리며 해준에게 물었다.



“야. 너 미필이지?”

“면제야.”

“군대도 안 갔다 온 게, 이거 웃기는 자식이네. 너 뭘로 뺐냐? 이 새끼 이래서 위아래 구분 못 하고 나대는 거 아냐?”

“그러는 너도 군대에서 기본적인 예의는 안 배워 왔나 보네? 초면인 상대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걸 봐서는. 아니, 그 듣도 보도 못한 예절은 군대에서도 개조가 안 되는 건가?” 



말릴 새도 없이 성준이 해준에게로 뛰어들었다. 멱살을 잡은 손아귀가 금세 주먹으로 변해 해준의 얼굴로 날아갔다. 성준은 넘어진 해준을 타고 뺨을 두어 대 때렸다. 해준 또한 보통 성질이 아닌지 덩치에 깔려 맞는 와중에도 반격을 했다. 제대로 턱을 맞은 성준이 눈이 뒤집혀 해준을 잡아 끌어 올리고 배에 주먹질을 했다. 체격 차는 무시할 수 없었는지 해준은 결국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야, 야, 성준아 그만해! 이러다 죽겠다!”

“강해준 씨, 강해준 씨 괜찮아요?” 



동식과 현의 합작으로 가까스로 해준에게서 성준을 끌어낸 와중에도 끝까지 해준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는 통에 (“저 새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동식이 안 되겠는지 “강해준 씨 뒤로 물러나 있어요!” 하고 외쳤다. 어어, 피 난다, 피. 이걸로 닦아요. 해준은 저를 향해 쏟아지는 말 줄기를 맞으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코 밑으로 흐르는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그것을 닦았다. 검지를 타고 무언가 바닥으로 뚝 떨어진다. 해준은 그 붉은 액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피? 고기가 타 희뿌옇게 연기가 낀 풍경과 왁자지껄한 소리가 한데 섞여 울렁이기 시작했다. 피……. 해준의 시야가 고꾸라졌다. 그리고 기절.






-

내 안의 해준 설정은 피를 못 봐서 의대를 안 갔다는... 그런...








(2)


나오는 익숙한 얼굴에 손을 흔들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온 해준은 출구 주변에서 담배를 태우던 자신을 보자마자 전매특허인 뭐 씹은 표정을 짓더니 쌩하니 가버린다. 평소에도 혼자 꿍해서 말도 않고 먼저 걸어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어 낯선 상황은 아니라지만 오늘은 무언가 다르게 피하려는 기색이 있었다. 주변 건물을 구경하며 올 생각을 안 하는 해준을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려 걸으면 어느새 저만치 앞서 가고 있고, 언제 저기까지 갔는지 놀라 따라 붙으면 속도를 갑자기 늦추고 뒤에서 천천히 걷는다.     



“뭐 하자는 건데.”

“뭐.”

“지금 나 피하고 있잖아. 뭔데.”



해준은 성준이 말하는 와중에도 슬금슬금 게걸음을 치고 있었다. 꼭 성준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난다는 얼굴로. 냄새나나? 문득 아침에 찌개를 끓여 먹었던 것이 생각난 성준이 팔을 들어 외투에 코를 묻었다. 탈취제 뿌리고 나왔는데. 



“같이 다니기 창피하니까 거리 유지하고 걷자. 그럼, 나 먼저 갈게.”

“..뭐? 창피?”



뭐가? 성준은 그제야 제 모습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땟국물이 묻은 게 아닌지 보는 것이다. 다행히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변수는 한 가지인데, 단순히 차림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성준의 모습은 (자신이) 보기에 지극히 평범했다. 외출할 때 자주 입곤하는 회색 맨투맨 티셔츠, 데이트라고 신경 쓴 -무려 유명 브랜드 매장에서 추천받아 구입한- 울 스판 재질의 바지, 평범하기 그지없는 국민 아우터 패딩, …단언컨대 이 패딩이 이상하다면 전 국민이 이상한 취향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패션의 마침표는, 역시 모자지. 


해준의 눈에 성준의 차림은 어느 한두 부분만 고쳐서 쓸 수 있는 수준을 지난, 회생이 불가한 가히 총체적 난국이었다. 잠옷으로나 입을 것 같은 티셔츠에 답도 없는 통바지. 헤진 모자. 모자를 쓰고 나온 걸 보니 분명 머리도 안 감고 나왔을.. 한숨. 



“이상해. ....다.”



아래에서 위로 성준을 훑는 해준의 눈은 경멸로 가득했다. 어디가 이상한데? 해준은 더 대꾸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아, 얘기를 해줘야 알지. 바지가 이상해? 



“야 이거 백화점에서 산 거야!”



해준은 문득 할 말이 남았는지 성준을 향해 다시 빙글 돌았다. 



“면도는 무슨 자신감으로 안 하고 나오는 거야? 그것보다 대체… 언제 마지막으로 한 거야?”



실은 해준이 지적하고 싶었던 건 센스나 스타일이 아닌 성의였다. 아무리 친구처럼 편안한 사이라 해도 엄연히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데이트인데, 연인과의 관계에서 챙겨야 할 기본적인 것도 준비해오지 않는 성준의 태도에 화가 났던 것이다. 저래놓고 기회만 생기면 얼굴을 들이미는데 아무리 살갗에 수염이 닿아서 아프다고 이야기해도 그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는 해준이 밀어내는 것이 부끄럼을 타기 때문이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매번 힘으로만 제압하려 들려했고…….    



“뭘 모르네. 이걸 보고 헐리우드 스타일이라고 하는 거야.”

“헐리우드 스타일 같은 소리.”



그러고 가봐라. 거지라고 쫓아내지 않으면 다행이지. 해준이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등을 돌려 깜박이는 횡단보도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허, 참. 누가 게이 새끼 아니랄까 봐 까다롭긴.”



취향 맞추기 드럽게 힘드네. 묵묵히 길을 건너는 해준의 뒤에서 성준이 소리를 질렀다. 계속 이렇게 따로 갈 거야? 밥도 따로 먹고? 영화도 따로 보고? 계속 그렇게 할 거냐고! 야! 야!! 강해준!!! 그럼 하나 사줘 보든가!!! 



‘으 창피해.’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성준을 쳐다보았다. 해준은 우렁찬 성준의 외침을 뒤로하고 코트 깃을 세워 목 가까이에 대고 얼굴을 가렸다. 일행이 아니다. 지 혼자 하는 일이다. 해준이 입김을 내뱉으며 눈이 소복이 쌓인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는 그들만의 단골 카페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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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신년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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