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백기] 반려 7 # 未生 2015. 2. 10. 11:30

7.



후에 백기는 회고할 적마다 그날을 떠올리곤 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관계를 만든 기점이, 바로 그날이었다고…….



그날은 하 대리의 결혼식이었다. 해준을 따라오겠다던 백기는 따라가겠다는 게 그 의미만은 아니었는지 식이 진행되기 전부터 해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그 둘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누구도 없었는데, 흔히 사무실에서 보곤 했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해준은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돌아다녔고 백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를 소개시키기도 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해준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해준은 환한 그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이곳에서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람. 저를 보며 다가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모른 척하고 지나가길 바랐던 마음에서였을까. 



“오랜만이시네요.”



하지만 그는 결코 그러는 법이 없었다. 



“그래.”

“성준이 형이 벌써 결혼하실 때가 됐다니. 그동안 저는 뭐 했나 싶어요.”

“…….”



백기는 해준의 뒤에서 대화를 들으며 내심 놀라던 차였다. 해준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앞에서 조잘대는 남자를 거의 무시하는 수준이었다. 백기는 그런 해준을 잠시 보다,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남자는 백기보다 반 뼘쯤은 더 크고 이목구비가 짙은 전형적인 미남형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에 먼저 눈이 가지 않은 이유는 얼굴만큼이나 화려한 넥타이 탓일 거라 백기는 확신했다. 낮은 목소리는 해준과 엇비슷했지만 그 목소리로 꽤나 수다스럽다. 백기는 남자와 해준의 관계를 추측해 본다. 절친한. 절친했던. 절친하고 싶었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사람이 해준에게 평범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이쪽 분은 처음 뵙는 것 같네요.”



그럴 거야. 해준은 남자의 말에 심드렁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소개 안 시켜주세요?”

“…대리님?”



그가 목적을 드러내고서야 해준은 마지못해 백기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백기는 어리둥절하게 있다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여긴 본사 이 대리. 이쪽은 내…… 후임. 장백기 씨.”



악수를 하는 짧은 시간 동안 백기는 발끝까지 훑고 지나는 눈초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눈빛은 날카롭고 선명했지만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남자는 자신을 훑는 게 아니라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소름 끼칠 정도로 노골적이어서 백기는 그 앞에서 마치 벌거벗은 채 치부를 드러내 보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꽉 쥐어진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반가워요. 백기 씨.”






백기는 숨 막히는 공기에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와 합석까지 하고 있었다. 같이 앉아도 되냐는 그의 말에 해준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뻔히 빈 자리에 못 앉게 할 수도 없었던 탓이었다. 본사의 이 대리라는 남자는 입사 당시 철강팀 소속이었으며 해준의 직속 후배였다고 했다. 그제야 백기도 그 이름이 과거의 문서에서 익히 보던 것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강 대리님은 아직도 철강팀에 계신 거예요?”

“응.”



붙임성 있게 말을 건네는 남자와는 달리 해준은 그를 거의 보지 않고 음식만 씹었다. 남자는 차려진 음식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쉼 없이 해준에게 이야기를 했다.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백기를 의식하는 듯한 남자의 행동이었다. 의무적으로 대답만 하는 해준에게 뻔한 질문을 던진다든지 웃다가 스킨쉽을 한다든지, 그 끝은 항상 백기를 보는 것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경계라 백기는 생각했다. 자신은 심지어 남자가 어떤 의미로 도발하는 것인지 그것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백기는 서서히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화기애애한 철강팀이죠.”

“글쎄.”



결국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한다. 불편한 자리에 있거나 신경쓰이는 것이 있으면 나타나는 고질적인 증상이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백기는 포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지 않은 그곳까지 가는 동안에도 뒤에서는 끊임없이 조잘대는 낮은 음성이 들려온다. 화장실에 들어오자마자 놀랍게도 통증이 사라졌다. 백기는 거울 앞에서 한숨을 한 번 쉬고서는 세면대 앞에 서 손을 씻었다. 거울 너머로 이 대리가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 몸 전체가 긴장한다. 백기는 미소와 함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보인다. 남자 또한 가벼운 목인사를 하며 답을 한다. 손을 씻으며 건네는 이야기들은 다분히 형식적이고도 시답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의 어조는 안에서와 달리 매우 차분하고 느렸는데 백기는 이게 원래 남자의 모습이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것들과 같이, 던져본 말이었다. “철강팀에 계시다 본사 발령 나셨다고 들었습니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남자의 표정이 순간 싸늘해진다.



“발령? 누가요? 강 대리님이 그러덥니까?”

“아… 듣기로는 그렇게…….” 



백기는 말끝을 흐렸다. 마치 어린아이이던 시절 혼나기 직전의 순간처럼 가슴이 콩닥거렸다. 예상치 못한 남자의 거친 반응에 당황한 차였다. 말실수 한 건가. 하지만 어떤 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해준이 형 어때요? 잘 해주나 봐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남자는 이제 핸드타월로 손을 닦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하나를 꼼꼼히 닦는 그의 모습은 누군가의 것과 겹쳐 보였다. ‘해준이 형’ 이라니. 그의 의미심장한 미소에서 백기는 결국 붉게 얼굴이 달아오르고야 만다. 이제야 남자가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 조각들이 제자리에 맞춰지는 것이다.



“저기 오해하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는데요. 저는 대리님과 아무 관계도.”

“강해준 피해서 부서이동 신청한 겁니다. 아니, 강해준이 시켰다고 하는 게 맞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준이 함께 있었다면 분명 쓸데없는 말이니 듣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늘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숨겨진 히스토리 혹은 비밀 따위에 편견을 가지는 사람이 아니니까. 자신 또한 이것이 들을 가치가 없는 말임을 알고 있음에도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다. 장백기 자신은 본래 이런 사람이다. 이 뻔한 저보다 제 곁에 있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 것이다. 자신이 없던 시절의 강해준, 내가 있기 전 그의 옆에 있던 사람, 강해준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는지. 본인에게는 물어볼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백기는 언제나 그것들을 알고 싶었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강해준이 게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백기는 원인터 내에서 그런 소문이 돈다는 건 들은 바가 없었다. 심지어 소식통이라는 석율을 곁에 두고도.  



“당사자를 눈앞에서 없애는 것으로 함구시켰죠.”

“……그럼 강 대리님이랑 대리님은.” 



백기는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울컥한 탓이기도 했지만 이만큼이나 스스로 확인하는 것으로 족했기 때문이었다.  



“저 지금 그쪽한테 조언해주는 거니까.”



남자는 웃더니 백기의 어깨를 두들기며 화장실을 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왔을 때에는 장내는 파하는 분위기였다. 대리들이 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것을 보아 뒤풀이라도 가는 모양이었다. 백기는 먼저 자신이 낄 자리는 아닌 것 같다며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가기 전 해준이 와 손목을 잡더니 미안한 얼굴을 한다.



“미안해요. 일부러 따라온 건데.”



백기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기분으로는 해준을 온전히 마주할 자신 또한 없었다. 괜찮습니다. “야! 강 대리!” 멀리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준은 저녁에 연락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백기를 떠났다. 멀어지는 등을 멍하게 보던 백기는 그 등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실은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자신은 사실을 직접 물어볼 용기조차 없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길은 유독 바람이 찼다. 지하철은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으로 붐볐다. 백기는 벽에 기대어 목에 감긴 넥타이를 풀어내고 갑갑한 윗단의 단추 또한 풀었다. 이대로 집에 간다면 우울감에 무기력한 두 날을 보낼 것이 뻔했다. 휴대폰을 꺼내 연락처를 뒤져본다. 날 좋은 주말에 불러낼 사람도 마땅히 없다. 결국 그는 담배를 사러 들어간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씻을 생각도 않고 벽을 기대고 앉아 유리컵에 소주를 콸콸 따랐다. 취하고 싶은 것보다 지금은 술을 마셔서라도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병의 바닥이 보일 때까지 핑핑 도는 시야를 제외하고는 잠기운이 도무지 찾아오질 않았다. 오히려 잡념이 뭉게뭉게 피어올라 잊고 싶은 사실을 끄집어내어 자신과 마주하게 한다. 


강해준은 나를 처음부터 갖고 놀기 위해 그랬던 거였을까. 삼 개월, 인턴? 그것들은 전부 허울 좋은 핑계였을 뿐이었고?


그때 전화가 반짝거리며 울렸다. 백기는 바닥에서 진동하는 그것을 처음 보는 물건인양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얼마간 떠 있던 강해준의 이름은 부재중이라는 세 글자로 바뀌었다. 전화는 그 후로 두 번 더 울렸다. 백기는 받지도 소리를 죽이지도 않은 채 그것을 내버려두었다.

그리고는, 완전히 끊겼다. 



울렁이는 속을 부여잡으며 일어난 백기는 깨질듯한 머리에 고개를 붕붕 저었다. 버릇처럼 확인한 휴대폰에는 밤사이에 그에게서 온 전화 한 통이 떠 있었다. 그걸 보고도 백기는 다시 전화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무작정 피한다고 될 일이냐. 월요일이면 꼼짝없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기 싫어도 꼬박 옆에 앉아 봐야 하는 사람인데. 백기는 사방으로 뻗친 머리를 얌전히 눌러 앉히다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에게는 다음의 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백기는 움찔하고 자리에 멈춰 섰다. 이 시간엔 항상 비어있는 사무실에 해준이 일찍이 와 앉아 있었던 것이다. 파티션 사이로 들려오는 소리가 없는 것을 보아 이 구역에는 해준과 저만이 있는 모양이었다. 오셨습니까. 백기는 아무렇지 않은 척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앎에도, 금방이라도 호통을 치며 화를 낼까 내심 겁을 내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인트라넷에 접속하고, 새로운 기사를 읽고, 일정을 확인하는 와중에도 온통 신경은 옆자리에 있다. 이쯤 되면 제 발 저린 도둑이다. 자리를 뜰까 싶다가도 쉽게 엉덩이가 들리질 않아 포기했다. 매일 마시던 커피 생각도 오늘은 웬일인지 나지 않아 애꿎은 머그잔만 만지작거렸다. 툭 물음이 던져진 것도 그때였다. 


 

“전화는 왜 안 받았습니까?”



앞뒤 잘라먹는 건 이제 특기인 듯싶다. 심지어 백기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였다. 백기는 되묻는 대신 준비한 핑계를 둘러대었다.  



“일이 좀… 있었습니다.”

“이 대리가 무슨 말을 했든, 신경 쓰지 마요.”

“…….”



이번엔 대답 없이 얼마간 해준의 옆모습을 보다 다시 몸을 돌려 바로 앉는다. 뭐 때문인지 알고 있었구나. 그런데 신경 쓰지 말라니. 아무것도 아니니 신경쓰지 말라는 건가? 전후 관계를 설명할 생각도 않고 묻어두려 하는 해준이 순간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이번에는 대답 없는 백기에게로 해준이 고개를 돌린다. 백기는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뜯고 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하죠.”



그리고는 먼저 걸어가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백기는 외투도 걸치지 못한 채 해준의 뒤를 급히 따랐다. 해준은 문이 열리자마자 최고층의 버튼을 눌렀다. 도착하고서 뚜벅뚜벅 걸어 올라간 곳은 건물 옥상이었다. 날이 추워진 탓인지 옥상은 텅 비어있었다. 



“뭐가 문젭니까?”

“문제없습니다.”



다짜고짜 묻는 게 이거다. 온전한 물음도 아니고 따지는 수준인. 무슨 이야기를 해 줄지 기대한 것과는 달라 대답이 부러 비뚤게 나온다. 



“없다고 생각합니까?”



더는 참을 수 없다. 이제는 백기가 선수를 칠 차례였다. 올라오는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말이었다. 



“저 그냥 안 하겠습니다.” 

“무얼.”



해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뭘 그만하겠다는지 모르지는 않을 터였다. 짜증 난다는 표정이 해준의 얼굴에 역력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질린다는 표정 하지 마세요.”

“지금 질리게 하는 사람이 누군데.”



해준은 문지르던 손을 내리고 백기를 보았다. 끝이 없다, 장백기는. 언제까지 알려주고 이해시켜야 하며 얼러주기까지 해야 하는지. 해준은 자리에 있는 두통약이 언제보다도 절실했다. 



“당신은 싫으면 피하고, 그렇게 피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죠.”

“그런 게…….” 



문제. 언제나 해준에게 자신은 문제였다. 풀어야 할 문제였고, 떠안은 숙제였다. 같은 철강팀에 배치되었다는 이유로, 위아래로 연결된 고리라는 이유 하나로 떠안은 숙제. 그리고 그 이상이 아니라는 혹독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은 견딜 수 없이 서글퍼지는 것이다. 대리님께 저는 풀리는 문제입니까, 끝까지 풀리지 않는 문제입니까……. 



“우리 사이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있습니까?”

“…그런 게 아니란 말입니다!”

“장백기 씨 지금 뭐하는 겁니까?”



기어이 뚝뚝 떨어진 눈물에 해준이 비딱하게 서서 백기에게 물었다. 백기는 그대로 뒤를 돌아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무작정 걸었다. 뒤로 자신의 이름이 몇 번 불렸던 것도 같았지만 멋대로 움직이는 다리는 멈출 수가 없었다. 하필 그 순간에 눈물이 터져버린 건지.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보이고 말았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백기는 15층에 손을 가져다 댄 후 빠르게 닫힘 버튼을 눌러댔다. 양옆으로 비치는 자신의 꼴은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추접스러울 것이 뻔하였다. 엘리베이터는 수 초간 부드럽게 움직이다 멈췄다. 문이 열리는데 타이밍 좋게도 그 앞에 영이가 있다. 영이는 백기에게 인사를 하려다 순간 놀란 듯 멈칫했다. 



“백기 씨…….”

“바람 알러지가 있어서요.”



백기는 창밖과 얼굴을 번갈아 가리키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일이 있느냐 묻기 전에 핑계를 대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결국 그가 피신한 곳은 화장실이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사방이 트인 자신의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을 용기는 없었다. 백기는 안경을 벗어 세면대에 올려놓고 따뜻한 물을 틀었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맞춰 남은 눈물을 마저 흘려보낸 뒤 물을 손에 담아 천천히 얼굴을 씻어냈다. 몇 번을 씻어냈을까, 별안간 등 뒤로 쇠문이 철컥하고 닫혔다. 고개를 든 백기는 거울 너머로 해준이 들어오는 것을 뿌연 시야로 확인했다. 해준은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그를 벽으로 밀어냈다. 등줄기를 흐르는 찌르르한 통증에 백기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다가온 얼굴의 표정을 확인하고서야 백기는 그가 단단히 화가 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억누른 듯한 잇새로 거친 숨이 새어 나왔다. 마침내 그가 낮게 그르릉 대며 말했다. 



“그렇게 말없이 가고, 멋대로 연락 안 받고. 나 화나게 하지 마.” 

“무서워요. 대리님.”



백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둘 사이로 얼마간 팽팽한 긴장이 이어졌다. 먼저 행동을 한 것은 해준이었다. 그는 잡은 백기의 양팔을 놓고 구겨진 팔의 셔츠를 정리했다. 갑자기 놓인 팔에 백기의 몸이 휘청였다. 해준은 그런 그를 두고 미련없이 뒤를 돌아 화장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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