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백기] 프로젝트명: 금연 # 未生 2015. 2. 14. 17:39

<프로젝트명 : 금연>

해준백기




“백기 씨, 가서 피우고 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손가락 끝을 테이블에 톡톡 두들기거나 엉덩이를 들썩이며 제대로 앉아있질 못하고 입술을 연신 씰룩인다든지, 명백한 금단 증상이었다. 해준 본인은 못 피우게 한 적이 없었으나 상대는 피우지 않겠다는 의지로 버티는 중이었다. 백기는 비흡연자인 해준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데이트를 하는 날에는 담배에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 해준이 키스를 해주지 않았기에 그것 또한 이유로 칠 수 있겠지만. 평소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종일 만나는 날엔 달랐다. 내내 한 개비도 피우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뻑뻑 피우는 것은 당연하고, 홀로 두고 밖에서 피울 수도 없었다. 해준은 개의치 않아 하는 듯했지만 백기는 연인으로서 나름의 매너를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정한 스스로의 다짐에 백기는 잠식당하고 있었다. 오늘은 저도 모르게 손까지 떨고 있던 모양이었다. 



“끊어보는 건 어때요?”



해준은 금연 4년 차로, 6년간의 흡연자 타이틀을 종식했다. 고로 냄새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은은한 담배와 향수 냄새가 섞인 백기 고유의 체취를 좋아했다. 단지 입안이 쓴 것이 싫어 키스를 하지 않는 것뿐. 제 어린 연인은 하지만 오롯한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발을 동동 굴러대며 참는 것일 터였다. 해준은 왜 그가 시간을 재가며 수고스러움을 감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해결방법은 의외로 간단했기 때문이다. 끊으면 되는 것. 



“꼭 기호로만 피우는 건 아니라.”

“아니라?”

“이게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일종의 스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백기의 말에 해준은 팔짱을 끼고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동기 간에 친목 다지는 자리에 혼자서 빠질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한석율 씨 불러서 얘기하면 되는 겁니까? 백기 씨 사정이 이러이러하니 봐달라고.”

“아, 아니요. 그런 건…아니구요.”

“또.”

“또? 네… 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서요.”

“아까랑 말이 다르네요. 방금은 사회성을 위해 담배를 피운다고 했는데 이번엔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백기는 입을 다물었다. 애초에 강해준을 말로 이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을지 모른다. 



“제가 피운 지 5년이 넘어서, 아무래도 끊는 건…….”

“습관이죠.”

“그게… 어… …네.”

“나도 스무 살 때 담배 배워서 백기 씨 나이 때쯤에 금연 시작했어요. 이참에 끊어보죠.”



백기는 또다시 입을 다문다. 해준은 턱 끝을 가볍게 드는 것으로 대답을 종용한다. 백기는 소리 없는 한숨을 쉬었다. 금연……. 저도 시도해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것은 한 번이 아닌 몇 번에 걸쳐 몇 년 간 이루어졌고,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마지막 시도를 이틀 만에 끝내고서 그가 내린 결론은 적당히 즐기고 살자는 것이었다. 피우는 만큼 머신 위에 있는 시간과 채소 섭취를 늘리면 되는 거였다. 돌연 생각하던 백기는 제 말에 해준이 이런 식으로 첨언 하지 않을까 예상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피우지 않으면  남는 시간과 비용으로 다른 걸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막연히 해야지 하고는 있지만 그것이 언제일지는 자신도 몰랐다. 비흡연자인 연인을 두고서는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언제까지고 금단현상에 시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해준이 이렇게 말해오는데 못 하겠다며 딱 잘라 거절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저만 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럼. 같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함께 목표를 갖고 실천하는 게 원하는 바일 테지만 상대는 완벽하게 금연에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대신할 것이 여의치도 않아 보인다. 일단은 다이어트를 할만한 체형도 아니거니와… 그는 회식자리가 아니면 술을 자주 마시는 편도 아니었다. 마셔도 12시를 넘기는 법이 없었으며 취하지 않은 상태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연락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 흠 잡을 데 없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연인의 표본이었다. 백기는 해준을 위한 다른 목표들을 떠올려본다. 로봇이 아닌 사람답게 살기? 소름 돋게 속옷 색깔 별로 정리하지 않기? …내 말에 딴지 안 걸기? 어느새 몇 가지 소소한 불만들이 고개를 불쑥 들고 곧 흔들어 없애버린다. 어떤 논리를 들이밀어 저를 경악게 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보상을 해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보상? 어떻게.”

“소원 하나 들어주십쇼.”

“뭔데요.”

“내용은 그때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백기 씨. 내용도 보지 않고 계약하는 사례 본 적 있습니까?”



위험하군요. 다시 배워야겠네요. 순간 욱한 백기는 자신과의 연애가 계약이냐고 따지고 묻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반박당할 것 같아 꾹 참았다.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속내를 드러낸다.



“도시락…….”

“……?”

“도시락… 싸주세요.”

“…….”

“그리고 대리님이랑 같이 소풍 가고 싶습니다.”



예의 그 소원이라는 것을 마지막까지 뱉어내고선 흘끗 눈치를 본다. 해준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역시 이건 별로인가.’ 백기는 해준이 요리를 꽤 잘한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왔다. 하지만 여태껏 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아서였다. 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 몰랐다. 


 

“그러죠.”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흔쾌했다.



**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한 잔씩. 해준은 손을 꼼지락거리는 백기를 휴게실에 데려다 놓고 손수 물을 떠주며 말했다. 백기는 해준을 흘끔 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찬 액체가 속을 뻥하고 뚫는다. 백기가 배를 만지작거리자 해준은 만족한 웃음을 짓고서 휴게실을 나갔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것만큼 물을 마시는 건 썩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애석하게도 화장실에 갈 적마다 담배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백기는 남은 물을 물통에 쏟아 버렸다.


돌아오자 석율이 파티션에 매달려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백기의 금연 선언에 가장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인 게 바로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을 외치며 아침, 점심, 저녁을 담배와 함께 수많은 이야기를 터놓는 대상이 더 이상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니. “그거 며칠이나 갈 것 같애? 삭막한 직장생활의 유일한 숨구멍을 틀어막는 거야? 그런 거야?” 백기는 혹여나 해준이 들을까 그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석율은 개의치 않았다. “압박이 있었던 거지? 그렇지? 여친이 못 피우게 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장백기가 이럴 리 없어.” 결국 듣고 있던 해준이 두 문장으로 그를 쫓아내었다. 



“장백기 씨 금연 중입니다. 목표 달성하면 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알고 있겠죠.”



백기가 금연을 시작했다는 소문은 곧 사무실 전체로 퍼져 나갔다. 보는 눈이 늘어난 탓에 백기는 회사 안에서는 의도치 않게 착실히 계획을 지켜가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주머니로 손이 갈 때마다 번뜩이는 눈동자들에 백기는 헛기침을 하며 머쓱하게 손을 비볐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잘 되어가냐며 묻거나 때론 응원하기도 했다. 연초와 맞물려 새해 다짐처럼 금연 운동은 유행과 같이 번져 나갔다. 문제는 퇴근 후의 집 혹은 술자리에서였다. 습관처럼 집에 가는 길에 슈퍼에 들른 백기는 담배를 꺼내려는 주인에게 아니라고 말한 뒤, 대신 초콜릿 바 하나를 집어 든다. 질긴 초콜릿 바를 씹으며 백기는 생각했다. 이게 뭐하는 짓이지.




금연 일주일 차.


“하아, 아, 으…….”



탄성을 뱉어낸 백기는 제 위에 실린 몸이 떨어지자마자, 몸을 옆으로 동그랗게 말고는 간신히 숨을 몰아쉬었다. 해준은 휴지로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닦고, 백기의 몸까지 닦아주고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간다. 곧이어 그가 들어간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백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딱 한 모금만.’


나가서 연기 한 모금만을 빨아들인 후 냄새를 빼고, 새 옷을 입으면 감쪽같을 거야. 해준은 관계 후 꽤 꼼꼼하게 샤워를 하므로, 어느 정도 시간이 있을 터였다. 그가 샤워하는 동안만. 백기는 몸을 일으켜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둔 구겨진 담뱃갑을 꺼냈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온 해준은 알몸으로 테라스에 기대고 서, 담뱃갑에 코를 묻고 있는 백기를 발견했다. 욕실에서 나온 그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백기는 요지부동이었다. 가까이 가보니 눈이 완전히 풀려있다. 해준은 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온기에 백기가 깜짝 놀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들어와요. 감기 들어요.”



해준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백기는 힘없는 얼굴로 그 손을 붙잡았다. 한 손에는 해준의 손을 다른 한 손에는 담뱃갑을 꼭 쥔 채로 다리를 휘청이며 방안으로 들어온다.  



“용케도 참았네요.”



불이 붙지 않은 담배 개비를 보며 해준이 말했다. 별안간 품에 백기가 안겨들었다. 해준이 달래듯 그의 등을 쓸다, 칭찬하듯이 백기의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는다. 손가락 사이로 마른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흘러내렸다. 



“힘듭니까.”

“누구 좋으라고 이걸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좋은데요.”



가슴에서 얼굴을 뗀 백기가 해준을 보았다. 원망스러운 눈이다. 해준은 손바닥으로 백기의 눈을 감게 한 뒤, 얼굴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입맞춤이 길게 이어졌다.  



“당신에게 더 자주 입을 맞출 수 있어 좋습니다.”



입을 뗀 해준이 말했다. 백기는 그 말만은 부정할 수 없어 애먼 허리만 더 꽉 끌어안았다. 그의 어깨에서 익숙한 바디샤워 냄새가 났다. “내일 갈까요, 소풍.” 해준이 나직이 말했다. 백기가 퍼뜩 고개를 들고 놀란 얼굴을 했다.



**



“안 그래도 이번 주쯤 가려고 했습니다.”

“도시락은…….” 

“따로 원하는 메뉴 있습니까?”

“음…… 스테이크?” 

“…….”

“농담입니다.”

“괜찮아요. 질겨도 상관없으면.” 





-

그냥 말 한마디 안 지는 해준 대리님이 보고 싶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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