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율백기] Buzzing-a # 未生 2015. 2. 25. 17:07

Buzzing-a

석율백기




Rrrrr... 


“장백기……. 백기야. 전화.”



전화 좀. 머리맡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옆에 누운 몸을 흔들었다. 네 전화잖아. 흔드는대로 힘없이 흔들리는 몸은 묵묵부답이다. 손수 제조한 폭탄주 두 잔에 넉다운 된 장백기는 침대에 내던지는 순간까지 반 시체 상태였다. 일어나서 받아. 제발 일어…날 리가 없지. 그렇다면 무시하자. 전화는 끈질기게 울렸다. 이불 위에서 몸부림을 치다 결국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멜로디와 절로 흥얼거리는 입, 점점 또렷해지는 정신. 내가 졌다. 손을 뻗어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는다.     



“장모ㄴ…, 아니 너희 어머니인데 백기야. 응, 안 일어나겠지. 너는 완전히 취했으니까. 그래, 자라 자.”



단정하게 앉아 잠긴 목소리를 큼큼 다듬어 풀고는 가볍게 버튼을 눌렀다. 예. 여보세요. 문자를 하다가 중간에 끊겼는데 전화까지 받지 않아 걱정을 하던 차라는 상대에게 상냥하고 나긋한 목소리를 낸다. 백기 잘 있구요. 네, 네. 옙. 들어가세요. 아드님 곁의 믿음직한 친구로 아시도록. 다정하신 어머니시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인지 우리 백기도 이리 다정한 걸까. 등을 보이고 자는 그의 뒤로 가 허리를 끌어안았다. 맨 등에 코를 묻고 킁킁거린다. 장백기 냄새 완전 좋아. 천연 안정제야. 그렇게 맨살에 얼굴을 부비며 꿈나라로 가려는 순간 다시금 화면이 반짝거렸다. 뭐야, 뭐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강해준 대리님. 받을지 말지 머뭇거리는 동안 불현듯 걱정부터 떠오른다. 이 시간에 전화라니 급한 일 있는 거 아냐? 어쩔 수 없다. 통화.



“여보세요.”

[……한석율 씨?]

“네, 강 대리님. 전화 대신 받았습니다. 장백기 오늘 좀 세-게 마셔서 지금 뻗었거든요. 급한 용무시면 때려서라도 깨울까요.”

[아니, 그럴 것 까지는 없고. 전화 내일 다시 하죠.]

“옙.”



급한 일도 아니면서 왜 전화를 하는 거야. 장백기의 휴대폰을 얌전히 베개 맡에 올려두고는 툴툴거리며 다시 그의 옆에 누웠다. 잠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조용한 집안의 공기가 식어 내려앉은 것만 같다. 갈아입히기는 귀찮고 자는데 불편할까 봐 벗겨만 놨는데, 휑한 등이 어쩐지 추워 보여 나는 일어나 벽에 붙은 온도 조절판을 눌렀다. 동시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벨소리. 아. 탄성이 절로 나온다. 화면을 확인해보았다. 이번에도, 또다시, 강해준 대리님이다. 



“네. 대리님.”

[한석율 씨. 혹시 지금 장백기 씨 집입니까? 뭐 좀 찾아봐 줄 게 있는데.]

“아닙니다. 저희 집에서 자고 있습니다. 장백기네 집 너무 멀어서요. 제가 이 덩치를 업고 거기까지 가기엔 많이, 아주 많이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요? 그럼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나한테 전화하라고 전해줘요.]



옙,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고 끊자마자 무정하게도 다시금 벨소리가 울린다. 강 대리니임- 제발 문자로 해요. 밤이고 낮이고 평일이고 휴일이고 일 생기면 전화부터 한다는 게 진정 사실이었냐. 장백기 너도 참, 힘들게 산다. 



“네.”

[……백기 오빠?]



강 대리님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가는 목소리에 급히 귀에서 휴대폰을 떼고 화면을 보았다. ‘받지마2’ 받으면 안 되는 전화였나. 순간적으로 당황해 말문이 막혔다. 뒤에 붙은 숫자는 또 무어고. 이런 게 더 있는가 보지. 



“번호 주인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임기응변의 달인, 나 한석율은 자랑할만한 반응 속도로 그럴듯한 말을 꾸며냈다. 오래간 말이 없다 싶더니 전화가 끊겨있다. 얼레? 나 지금 한 건 한 건가. 이름하여 받지 마 퇴치. 나 완전 잘했지 장백기. 칭찬해줘. 지금은 힘든 것 같으니 일어나면. 그나저나 이 여자 누구야. 전 여친이라든가 뭐 그런 거야? 내일 묶어놓고 심문해야겠다. 그러려면 에너지를 보충해둬야겠지. 하아암. 하품이 절로 나왔다. 잠으로. 이젠 나도 한계다. 졸음이 쏟아진다. 휴대폰은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너와 나의 평안을 위해. 




**




장백기는 아침잠이 없다. 얼굴만큼이나 생활습관이 조숙했다. 하는 짓은 애새끼가 따로 없으면서. 오늘도 숙취라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새벽같이 기상하더니 제집인 양 뽈뽈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커피까지 내려 마신다. 무거운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려 보니 내 자식들과도 같은 패션 화보집을 들춰보고 있었다. 어디서 찾아낸 건지 공장에서 공수해온 40수짜리 가운까지 챙겨 입고선.  



“강 대리님한테 전화해. 어제 너 자는 동안 전화 왔어.”



풉, 커피를 뿜을 뻔한 그가 테이블에 컵을 내려놓더니 쿵쾅거리며 계단을 밟았다. 어, 천천히 올라와. 거기 조심해, 조심. 



“그걸 왜 지금 말해요? 때려서라도 깨웠어야죠.”

“내가 어제 너를 몇 번….”

“여보세요. 네, 대리님.”

“…이나 깨웠는데…. 응, 써, 써.”



컴퓨터 좀 쓸게요. 입 모양을 낸 그는 어깨에 휴대폰을 끼고 분주하게 내려갔다. 응, 조심, 조심. 잘못하면 구른다. 내가 몇 번 그랬지. 다음엔 절대 복층에서 안 살 거야. 하지만 복층의 좋은 점이라면 반쯤 풀어진 가운에 젖은 머리를 하고 업무 통화를 하는 장백기를 위층 침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 남자는 일 할 때 가장 섹시하다더니. 가장까지는 아니고 두 번째 쯤 되려나. 물론 첫 번째는… 비-밀.



“별 거 아니었네. 난 또 놀래서.”



노트북을 탁 덮은 그가 만족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일이 터졌으면 주말이고 자시고 꼼짝없이 회사로 튀어 나가야 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고. 올라온 그가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추워? 묻는 말에 고개를 젓는다. 긴장이 풀리니 나른해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헝클어진 머리를 가만히 쓸었고 장백기는 눈을 감았다. 만지는 대로 얌전히 누워있던 그가 문득 내게 물었다.  



“저 석율 씨 집에 있다고 했어요?”

“대놓고 장백기 집이냐고 물어보는데 둘러댈 새도 없었지. 왜. 강 대리가 뭐라고 해?”

“아니, 그냥…. 물어보시길래요.” 

“들킬까 봐 걱정돼? 강 대리 눈치 빠른 사람이라?”



아니……. 장백기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곧 입을 꾹 다물었다. 강 대리라면 알려고 했으면 진작 알았을 것이다. 오죽 티를 냈어야지. 조심한다고 한 건데 의심스러운 상황에 항상 내가 옆에 있는 꼴이 됐다. 다음번엔 전화 받지 말아야지. 사실 알아도 상관은 없지만. 나는 가운 속으로 손을 넣어 그의 허리를 쓸었다.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움찔하는 민감한 몸이 가까이 붙어왔다.  



“…뭐예요.”

“받지마는 누구야.”

“그건 또 언제 봤어요. 있어요. 술만 마시면 나한테 전화하는 애들. 원 투 쓰리.”



쓰리까지 있는 거야? 매번 생각하는 거지만, 장백기는 너무 힘들게 산다. 잘라낼 줄 모르고 거절도 못 한다. 그거 다 네 사람 아니라고 끌어안고 갈 필요 없다고 해도 당최 말을 들어 먹질 않았다. 



“나는 ‘받아요’ 인가. 하트 추가해서.”

“아니요. ‘한석율 씨’”

“너무하네. 바꿔줘. 다정하게.”

“아, 바꿔야겠다.”



장백기가 내 손을 떼어내고 번쩍 일어나 화면 위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한석율 사원 섬유 1팀.’ 재밌다고 까르르 웃는 그에게서 나는 휴대폰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이리 내. 뺏기지 않으려 버둥대는 그를 와락 끌어안고 그대로 눕혀버렸다. 올려다보는 장백기의 눈이 무구해 하마터면 아래가 동할 뻔했다. 나는 그의 안경을 조심스레 벗기고 입을 맞췄다. 



“아침부터 무슨.”

“그러니까 그렇게 마음대로 일찍 자래?”



한석율 씨가 이상한 술 먹였잖아요. 맥주만 마시면 그렇게 빨리 취하지는 않는데. 입은 댓 발 튀어나와서 종알종알. 쉼 없이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바지춤을 더듬는 손은 불경스럽기 짝이 없었다. 움직이는 입술 위로 다시금 입을 맞췄다. 조용하네. 가운 끈이 완전히 풀어져 장백기의 하얀 몸이 드러났다. 대놓고 잡아 드쇼 하는 발칙한 행동에 웃음만 나온다. 눈만 그렇게 뜨면 순진해 뵈는 줄 알지. 나는 그의 브리프를 빠르게 벗겨내 얼굴을 묻었다. 그와 함께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힘찬 멜로디. 설마.



“잠깐, 석율 씨. 전화 좀.”



그놈의 전화 또냐, 또! 이쯤 되면 태평양 같은 내 인내심에도 가뭄이 든다. 나는 그의 것에서 입을 떼고 말했다.



“무시해.”

“선배네.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무슨 선배. 누구. 왜 오늘이야. 안 돼. 못 가.”

“왜 이래요. 석율 씨, 잠깐만. 금방 받고 올게요.”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드는 장백기에게서 그것을 빼앗았다. 뭐 하는 거냐는 얼굴은 가볍게 건너뛰고 그대로 그의 몸을 뒤집었다. 나오라는 그의 외침에도 나는 묵묵히 그의 허리를 잡아 내 앞에 자리 잡도록 자세를 고쳤다. 받아, 누가 못 받게 한대? 나는 장백기의 눈앞에 휴대폰을 보이며 말했다. 봐라. 통화 누른다. 누른다고. 눌렀어. 그리고 스피커폰 전환. 어, 백기야. 굵직한 목소리가 휴대폰 밑으로 새어 나왔다. ‘말해.’ 나는 장백기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여보세요. 백기야?]

“네, 네. 여, 여보, 세요.”

[난데. 오늘 △△에서 보는 거 알고 있지?]



어쭈, 거기 유흥주점 아니야? 요즘은 동창회를 이런 데서 하나보지? 첫 번째 서랍에서 젤을 꺼내 손가락 위로 한 움큼 짰다. 차가운 점액이 닿자마자 엉덩이가 움찔댄다. 



“오, 늘. 오…후였죠.”



안 된다고 해. 나는 단호하게 말하며 뒤를 뭉근하게 문질렀다. 시트에 얼굴을 묻고선 도리도리 젓는 고개가 애처롭다. 못 가겠다고 못 하겠다는 건지, 손가락을 넣지 말라는 건지. 둘 다 안 돼. 이건 벌이야, 장백기. 죄목은. 인기가 너무 많아서 나를 힘들게 한 죄.



[응. 올 수 있지?]



장백기의 뒤가 젖어가며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 두 개를 한 번에 집어넣고 안을 헤집었다. 행여나 들릴까 안절부절못하는 몸은 앞뒤로 움직이며 꿈틀거렸다. 못 간다고 해. 안 하면. 나는 손가락을 세워 장백기가 느끼는 내벽을 문질러 댔다. 단언컨대 1분 내로 그분께서 올 것이다. 상대는 고음을 내지르는 장백기의 신음을 라이브로 감상하게 되겠지. 물론 들려줄 생각은 없지만. 



“선배, 제가, 오늘은, 몸이 안 좋, 아서, 으, 네에.”



이제 그는 거의 울려고 했다. [그래? 많이 안 좋은 거야? 아쉽네. 그럼 다음에 보자.] 백기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상대도 느꼈는지 쉽게 포기하는 듯했다. 장백기는 빠르게 통화의 매듭을 지은 뒤 강제로 눌러 휴대폰을 꺼버렸다. 동시에 나도 휘젓던 손가락을 빼냈다. 



“…야, 한석율!”



끊자마자 새된 음성이 튀어나온다. 형님한테 야가 뭐야, 야가. 분한 얼굴에 발갛게 젖은 눈가, 씩씩거리는 숨. 비단 돌발 행동에 화가 난 것만은 아닐 터였다. 미안. 그만할게. 나는 천진하게 양손을 들고 항복을 외쳤다. 나야 그만둬도 아쉬울 게 없지만 너는… 한참 부족한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든 장백기의 것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장백기는 뾰족한 눈을 하고서 한참 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몸을 덮쳐 눕힌다. 눈 깜짝할 새에 아랫도리에 걸친 것들이 사라지고 묵직한 몸이 그 위로 올라탔다. 밉다, 진짜. 말과는 달리 그가 절대 날 미워하지 못하리라는 걸 나는 안다. 웃음을 터뜨리자 솜 같은 주먹이 가슴 위로 몇 번 날아왔다. 나는 그를 안고 너른 등을 달래듯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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