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그와트au # 未生 2015. 3. 17. 19:35



날이 맑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새파랬고 백기는 빗자루를 틀어 오를 수 있는 만큼 올라 경기장을 내려다보았다. 바람이 불지 않는 덕에 시야가 넓게 트였다. 붉은색 퀘이플을 든 상현의 뒤로 검은 블러저가 바짝 쫓고 있다. 백기는 그곳으로 날아가 배트를 휘둘러  반대편으로 날려 보냈다. 그가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상대의 진영은 풍비박산으로 흩어지며 무너졌다.  


백기의 눈에 들어온 건 스니치를 향해 방향을 튼 장그래의 뒷모습이었다. 몇 초면 닿을 거리에 날개 달린 작은 공이 반짝이고 있었다. 백기는 파트너 몰이꾼에게 신호를 보내 블러저를 유도했다. 그리고는 힘껏 배트를 휘두르려는 찰나였다. 퍽- 하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에 들린 배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악!” 백기는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팔을 감쌌다. 반대편에서 날아온 블러저에 팔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는 사이 백기는 빗자루를 놓치고 말았다. 그라운드로 곤두박질 치는 순간 경기 종료 휘슬이 귓가에 울렸다. 경기장 안은 환호성 소리로 가득 찼다. 그래가 스니치를 잡은 것이다. 제길, 제길……! 백기는 다치지 않은 팔로 그라운드를 내리쳤다. 멀리서 착륙한 팀의 일원들이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두운 병동 안은 약초의 쿰쿰한 냄새와 희끗한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해준은 부인에게서 백기의 상태를 전달받는 중이었다. ‘뼈는 도착하는 대로 맞췄지만 하루 정도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오늘 밤은 이곳에서 지내야 했다. 백기는 깁스를 하지 않은 팔로 안경을 집어 비뚤어진 테를 구부려 폈다. 간단한 주문 하나면 새것처럼 곧게 펴지지만 낙하하면서 떨어뜨린 모양인지 지팡이는 통 눈에 보이질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해준의 목소리와 함께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백기는 안경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는 재빨리 침대에 몸을 묻었다. 

 


“오늘은 여기서 지내야 한다고 하네. 정리는 우리가 할 테니 너는 여기서 쉬어.”

“…….”

“연습은 당분간 나오지 않아도 돼.”



뜻밖의 언질에 백기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당장 일주일 뒤에 시합이 있어요. 연습하지 않으면…….”

“네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해준은 단호하게 대답하고 등을 돌렸다. 그가 움직일 적마다 은색 유니폼이 부드럽게 펄럭였다. 백기는 그가 문밖으로 사라지는 걸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백기는 손에 잡힌 반창고를 힘껏 집어 던졌다.



“워- 워- 진정해 진정. 장백기.”



씩씩거리며 거친 숨을 뱉던 백기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둥그런 반창고가 벽에 부딪힘과 동시에 문이 다시 열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의 등장. 한석율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싱글하게 웃는 얼굴이 화사했다. 퍽이나 즐겁기도 하겠지. 경기에서 이겼으니. 백기는 부인이 가져다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안정제를 통째로 들고 마신 후 당장에라도 잠들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뭔데.”

“사과하려고 왔지. 네 팔 그렇게 만든 거, 나거든.”



석율은 오늘 경기한 상대 팀의 몰이꾼이었다. 문제의 블러저는 아무래도 한석율이 친 공이었던 모양이었다. 석율은 백기도 인정하는 훌륭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온전히 백기 자신의 불찰이었다. 기초 중의 기초인 주변을 살피지 않고 수색꾼을 쫓은 것. 장그래를 잡겠다는 일념 하나로 무방비하게 상대에게 자신을 노출시켰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 사이로 인영이 드리웠다. 그래가 문틈으로 빼꼼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마 들어오지는 못해 문 앞에서 서성이는 듯했다. 백기는 그것을 못 본 척했다.



“뭐, 알았어.” 



백기는 귀찮은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석율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 가까이 다가왔다. 



“뭘 알아? 알고 있었어? 설마 알면서 안 피한 거?”

“아니, 미쳤어? 알면서 왜 안 피… 사과받아주겠다고. 그러니까 좀 가.”



<정숙, 절대 안정> 백기는 침대맡에 걸린 팻말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디, 얼마나 다쳤나 보자. 석율이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침대 끝에 걸터앉으려 하자 결국 백기가 빽 소리를 질렀다. 달려온 부인의 호통을 듣고서야 석율은 병동을 나섰다.




**




이른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연회장으로 들어선 백기는 더 일찍 왔어야 했나 뒤늦은 후회를 했다. 안쪽에는 상현의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기는 부러 테이블 끝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폈다. 병동에서 밤을 지낸 다음 날 부인은 붕대를 풀어도 좋다고 했지만 백기는 일부러 그것을 풀지 않겠다고 했다. 분노한 학생들이 그가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에 잠잠해졌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자신이 다치지 않았더라면 한동안은 연회장, 복도, 교실에서 안티 배지를 단 학생들을 마주해야 할 것이 뻔했다. 


백기는 접시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우편물을 집어 들었다. 포장을 뜯자 이니셜이 도금된 새 지팡이가 손안으로 떨어졌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지팡이는 두 동강 난 채로 관중석 난간 밑에서 발견되었다. 운 나쁘게도 떨어진 지팡이가 부러졌던 모양이었다. 1학년인 경재가 반 토막이 난 자신의 지팡이를 가지고 왔을 때 백기는 그것을 미련 없이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간밤에 새로이 주문했던 것이 지금 도착했다.  



“오, 새 지팡이?”



어느새 상현이 백기의 옆에 와 앉았다. 구경하겠다는 상현의 말에 백기가 지팡이를 건넸다. 백기는 포장지를 구겨 테이블 옆에 치워둔 후 남은 오믈렛을 입에 넣었다.



“강해준이 연습 나오지 말라고 했다며.”

“응.”

“자기 멋대로야. 지금 시합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번에도 지면 우린 끝이라구. 끝.”



상현은 지팡이로 목을 긋는 시늉을 하더니 다시 백기에게 그것을 돌려주었다. 백기는 허리에 지팡이를 쑤셔 넣었다. 



“마음에 안 들어. 반장이면 다야.”



해준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백기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식사를 하러 들어오는 그를 쫓다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의 시선은 붕대가 감긴 팔에 갔다가 다시 백기의 얼굴로 돌아왔다. 백기가 먼저 인사를 하자 해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퀴디치 주장을 맡은 후로 해준은 예민하게 굴었다. 상의해야 할 일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잦았고 팀원들은 그것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다. 그들의 불만은 하루 이틀 사이에 나온 것이 아니었다. 연습 강도는 역대 최고라 할 수 있었지만 성적은 역대 최하였다. 사기는 점점 떨어져갔고 기어이 지난주에는 탈퇴하겠다는 사람까지 나왔다. 백기는 그가 왜 팀원들에게 예민하게 구는지 어렴풋이 알았다. 작년 여름, 폭우 속에서 경기가 이루어진 날 목숨을 잃을 뻔한 여학생이 자퇴를 한 후로 유독 부상과 안전에 민감해 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주장이 된 후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는 것도 아니고. 분위기는 점점 가라앉는데 말이야.”

“…….”

“우승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도 있어. 혹시.”



백기는 포크를 내려놓고 책을 탁 소리 나게 덮었다. 



“다 먹었으니 나 먼저 일어날게.”




**




밤사이 온 눈으로 언덕은 온통 하얀 빛이었다. 백기는 언 손을 비비며 선술집에 들어섰다. 가게의 구석진 곳에 그래와 석율이 먼저 와 앉아있었다. 백기는 의자를 빼고 앉아 데운 버터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어어, 장백기. 잘 왔어. 어, 그러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 어? 성 교수 이 개……!”



그래가 고갯짓을 하며 눈치를 주었다. 약초학 교수인 오상식과 일행이 가까운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나, 연습 있다고. 장그래. 분신술에 대해 뭐 아는 거 없어?”

“아니. 그리고 성 교수님이라면 분신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리실걸.”

“장백기. 너는?”

“지금 이 얘기 하려고 여기까지 부른 거야?”

“넌 우리 휴게실에 못 들어오잖아.”



그리고 이것도 없고. 석율은 버터 맥주를 가리키더니 그것을 한 번에 끝까지 들이켰다. 백기는 잔에 손을 가만히 대고 온기를 느꼈다. 따뜻한 잔을 손에 쥐자 얼어있던 몸이 녹는 듯했다. 



“연습 못 하는 건 나도 매한가지야. 다음 주까지 나오지 말래.”

“누가? 강 선배가? 왜?”

“글쎄. 벌이라면 벌일까.”



백기는 쥐고 있던 잔을 들어 꿀꺽꿀꺽 맥주를 마셨다. 목구멍으로 맥주를 넘길 때마다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부터 해준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럴만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그럴만한 행동거지를 보였던 것도 아니었지만 해준은 백기에게 유독 무정했다. 그에게 왜 자신을 싫어하느냐 대놓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해준은 그 질문에 끝내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년이면 졸업반인 해준에게 실질적으로 선수로서 뛸 수 있는 해는 올해가 마지막이었다. 학교를 떠나면 다시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 수 년간 참아왔던 것, 이제 몇 달만 참으면 될 터인데. 



“나는 분신술이 아니라 투명망토가 필요한 참인데.”

“학교 내에서 분신술, 투명망토 모두 금지야. 그 전에 할 수 있는지가 문제겠지만.”

“압니다요. 그건 나도 알아요. 오죽 급하면 내가 이러겠……. 근데 안영이 언제 왔어?”



백기와 그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테이블에 어느덧 영이가 와 있었던 것이다. 



“무슨 소리야? 우리 같이 왔잖아.”



영이는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의 눈 밑으로 짙은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그래와 석율이 마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분명 학교를 나설 때부터 들어와 맥주를 시키는 순간까지 내내 둘이었기 때문이었다. 석율은 귀신을 본 듯 손까지 떨며 말했다. 장백기는 혼자 들어왔지. 백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 몰라, 모르겠다. 배고프다.”



영이는 갑자기 배가 고프다더니 손을 들어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주문했다.  



“너희는 배 안 고파?”



영이는 입을 벌려 햄버거를 크게 베어 물었다. 영이는 정말로 배가 고팠는지 단숨에 햄버거를 먹어치웠다. 세 남자는 뜨악한 표정으로 우적우적 남은 음식을 씹는 영이를 바라만 보았다. 백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석율은 손가락을 겹쳐 연신 사진을 찍는 시늉을 했다. 






-

해준, 백기 : 슬리데린

그래, 영이, 석율 : 그리핀도르


라는 설정으로 커플링은 해백을 염두에 뒀지만 둘이 딱히 뭐가 없어서(ㅠㅠ) 노선 변경.... 백기른이라고 해봤자 결국 올캐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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